2023 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시)
불이야, 대피, 대피, 황급한 목소리가 뛰어다닌다
또 불이다 모레가 설날인데
합판과 떡솜이 쏘시개가 되자 불길은
낮게 엎드린 집의 품을 파고든다
모두 뛰쳐나가고 빈집은 뜨거움만 덥석 안았다
가로등도 없는 무허가 동네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새해가 오기 전에
낡고 가난한 것들이 없어지는 순간이다
부정을 지우고 소원을 비는 의례처럼
연기를 따라 공중 높이 올려보내는 시선들
그나마 오갈 데가 없어졌으나
쓸모없는 걱정은 묻지 않는다
가까스로 불똥이 튀지 않은 집과 그늘진 골목은
누수와 누전으로 차갑게 식다가 마침내 꽁꽁 얼고
하루라도 따뜻하게 살고 싶다는 노인이
방보다 따뜻한 바깥으로 나간다
영하의 거처에 갇힌 또 한 노인은
공동화장실 다녀오다 죽은 친구를 불러와
마음을 파고드는 외로움과 추위를 달랜다
그곳은 좀 살 만하더냐
차례상에 올릴 사과도 배도 불탄 채 뒹군다
음복이라도 하자고 입김을 내뿜으며 누군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