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연필로 그리는 마당
터닝 포인트
인생 반환점,
마라토너들은 여기서부터 속력을 낸다지?
-「반환점」 전문
퇴직을 생각하면서부터 ‘반환점’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제 직업을 떠나 본업이라 생각해온 ‘글 쓰는 자’로서의 삶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었다. 또 지금껏 가보지 못한 새로운 방향을 따라 걷고 싶었다. 그러니까 내가 반환점이라고 생각하는 시점을 지나왔으니 직업이라는 짐을 내려놓고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기회를 엿보던 시기였다. 막 반환점을 돈 마라토너처럼 속력을 내야 할 때라는 생각이 깊어졌다.
집을 지은 것도 그즈음의 시기였고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누군가가 시켜서 했다면 놀아도 그렇게 즐거웠을까. 스스로 결정한 대로 하다 보니 일도 공부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고 내게 주는 선물로 느껴졌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은 앎을 통해서만 행복해진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좋은 사람들을 오래 만날 수 있는 건 복이다. 그러나 제자리걸음처럼 만날 때마다 같은 주제를 곱씹으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건 고역이다. 그러니 인생반환점쯤에서는 새 사람들을 만나 그동안 흔히 보지 못했던 뾰족하거나 삐뚤빼뚤한 세계를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겠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흥미진진한 일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애나 어른이나 새 친구에게 목이 마르다. 물론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도, 관계를 지속시키기도 어렵다. 또 연륜이 쌓일수록 다른 사람의 의견과 삶에 편견 없이 젖어들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굳어져 가는 생각을 말랑하게 다듬어야 할 과제가 남았다.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니 장담할 수가 없다. 얼마 전 지인과 영화를 보러 갔다. 20여 분 일찍 갔으나 매진이라고 했다. 이른 오전 시간이라 어디 갈 데도 없는데, 갑자기 ‘비사벌초사’가 떠올라 함께 가보기로 했다. 그동안 가려고 했지만 가보지 못했던 곳. 마침 1년 전부터 카페를 열고 있었다. 이제 막 문을 연 카페에 첫 손님으로 갔는데, 그곳 직원이 신석정 시인과 고택에 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이곳저곳을 안내해줬다. 시인은 태산목꽃이 피면 벗을 불러 꽃을 술잔 삼아 향을 즐겼다고 했다. 시인은 갔지만, 아직 일러 꽃을 피우지 않은 태산목은 다른 나무들과 함께 고목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후로 위풍당당한 태산목은 자주 내 눈에 띄었다. 어긋난 길에서 생각지도 못한 풍경을 만났던 날, 그래서 더 잊지 못할 하루였다.
우리는 결승점은커녕 바로 뒤에 올 시간에 대해서조차 확실히 아는 바가 없다. 아직 결승점에 가보지 않았으니 가는 데까지의 방향, 거리, 난이도 등에 대해 알 수 없다. 오직 그쪽이라고 믿고 갈 뿐이다. 이런저런 상처와 아픔으로 절뚝거리면서라도 다만 완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