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연필로 그리는 마당
다락방의 추억
대여섯 살 이후쯤부터 살았던 집은 좁았지만 다락이 있었다. 다락에는 삼촌이 쓰던 철제 스프링 침대와 작은 칠판이 있었고 동네 남학생들이 삼촌에게 영어를 배우러 다락을 들락거리던 기억이 있다. 까까머리에 까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몰려가던 기억이 흐리면서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삼촌이 성인이 되어 거처를 옮긴 후로는 나와 동생들이 다락을 차지하고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놀았다. 그러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 우리가 다 크기도 전에 다락은 계단을 접어 올리고 도배를 해버려서 다락은 추억과 함께 봉해졌다. 그곳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천장을 바라보면 그곳엔 삼촌과 교복 입은 오빠들이 지금도 공부하고 있고 또 돌이 된 남동생이 내 손을 잡고 올라가고 있고 친구들과 하는 공기놀이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실 다락방은 작은 공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그래서 결코 작지 않은 우주였다.
바슐라르가 『공간의 시학』에서 어린 시절 다락방에 대한 추억은 “작으면서도 크고, 더우면서도 시원하고, 언제나 기운을 되찾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듯 내게도 그런 곳으로 각인되어 있으며 지금까지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집을 설계할 때 보니 우리 땅은 건폐율이 20%여서 아래층은 삼십 평밖에 지을 수 없었다. 안방과 서재, 작은 방 하나와 주방, 거실까지 어느 것 하나 뺄 수 없는 구조가 너무 답답한 것 같았다. 그래서 어릴 적 다락 같은 2층을 만들고 싶었다. 2층은 1층의 생활공간과는 다른 공간, 그러니까 벽을 두지 않고 다 터서 널찍하게 숨통이 좀 트이는 곳이었으면 했다.
아래층에 있는 온갖 살림살이와 집안일을 외면하고 싶을 때, 노트북 하나 들고 이층으로 간다. 나의 다락 2층에서는 영화 한 편을 보거나 배를 깔고 엎드려 만화책을 보거나 창밖 초록으로 시선을 보내며 멍~하니 있어도 좋다.
2층은 멀리서 온 손님들이 하룻밤 묵을 때, 또 아들이 오랜만에 와서 지낼 때 주로 써왔다. 코로나 19 때는 가족이 격리할 때 쓰기도 했다.
우리 집 2층은 다락은 아니지만, 머물다 간 사람들에게는 다락방 같은 곳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잠시 일상을 접어놓고 다락방 아닌 다락방에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동심을 끄집어낼 수 있는 장소이기를 바란다. 풀냄새 나는 짚으로 된 침대가 있던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다락을 떠올리거나, 지나간 추억을 꺼내어 기운을 되찾게 하는 장소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