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연필로 그리는 마당
용동리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그때까지 앞마당과 뒷마당, 그리고 집 한쪽으로는 텃밭이 있고 반대쪽에는 대밭이 있는 곳에서 나고 자랐다. 뒤꼍에는 큰 감나무가 두세 그루, 보리밥나무, 앵두나무, 무화과나무가 있었고 대문 기둥에 기대어 능소화가 치솟아 꽃을 피우고 있었다.
붉게 물든 감잎을 따다 소꿉놀이할 때 돈으로 삼았던 기억, 아버지가 앵두나 보리밥을 따줄 때 벌에 쏘이지 않으려고 둥글면서 단단한 흰 모자를 썼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모내기하는 날 마루 가득 사람들이 둥근 밥상 몇 개를 펴놓고 밥을 먹고 있던 그림도 그려진다. 성인이 된 후에 들었는데 그땐 경상도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아 전라도에 와서 한 달씩 머물면서 모를 심거나 벼를 베고 갔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 마루에 가득했던 사람들이 경상도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그 후 작은아버지 가족이 그 집에 살게 되었다. 우리는 김제역 근처의 작은 상가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거기엔 우물이 있었고 뒤쪽으로 방이 서너 개 딸려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계속 상점을 열었고 우리 가족은 방 하나를 쓰고 나머지는 세를 주었다. 그러니까 작고 길쭉한 집에 고만고만한 자녀가 있는 서너 가족이 항상 함께 살았다. 마당이 없는 긴 복도형 집은 어릴 땐 그렇게 비좁다는 생각을 못 했지만 결혼해서 나올 때쯤엔 우리만 살았는데도 작게만 느껴졌다.
결혼하고는 거의 아파트에서 살다가 어느 날 땅을 사서 집을 짓고 마당을 갖게 되었다. 내 무의식 속에는 유년에 누렸던 마당이 말없이 살아있었던 모양이다. 마당이 생기자마자 그때 보았던 능소화나무도 대문 옆에 심고 뒤꼍에는 무화과나무와 감나무도 심었다. 시간도 공간도 전혀 다른 집이지만 용동리의 기억을 이곳 우목실에 옮겨 심은 것이다. 지나온 시간 속으로 다시 걸어서 돌아가는 일은 불가하지만, 그때의 일들을 불러내 그때의 모양으로 기분을 내는 건 가능하다.
요즘엔 같은 나무라고 해도 품종개량으로 열매도 더 크게 열리고 잎이나 꽃 색도 화려하고 다양하다. 그러나 열매가 작아도 꽃이 촌스러워도 토종에 마음이 간다. 어린 눈으로 처음 보았던 나무와 꽃들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첫사랑처럼 모든 ‘첫’은 깊이 각인되는 성질을 지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