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연필로 그리는 마당
당신도 편안하시기를
‘편안’이란 몸과 마음이 걱정 없이 편하고 좋음이다. 그러니까 두루두루 건강하여 무탈한 상태를 말할 텐데. 과연 무탈한 날이 얼마나 될까. 무탈한 날이 하루라도 많아지기를 염원하며, 건강한 일상을 위한 상식적인 일들을 실천하느라 나는 종종걸음을 친다.
하루 한 시간 정도는 걷는다. 근처 모악산 편백나무숲길이나 계곡길에 간다. 완만한 오르막 산길이지만 땀을 제법 흘린다. 또 자주 환기를 시키고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틈틈이 이불을 햇볕에 넌다.
어릴 적 학교에서 공짜로 나눠주던 빵 맛을 잊지 못하는데 동네 빵집에서 그 맛이 나는 바게트를 발견하고 자주 들락거린다. 그 집은 오전 11시 넘어서 문을 열고 또 일찍 문을 닫는다. 빵도 소량씩만 만드니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빵을 쉽게 살 수 없다. 쉽게 살 수 있는 프랜차이즈 빵은 단맛이 너무 강하고 씹다 보면 떡처럼 뭉쳐버리는 느낌이 내 취향은 아니다. 그러니 조그맣고 불편하지만 건강한 동네 빵집을 아끼고 사랑한다.
마당에 꽃씨를 심고 싹이 날 때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자주 줘서 잘 크도록 돕는다. 백일홍꽃이 얼마나 예쁜지 심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꽃씨 한 봉지를 심으면 색과 모양이 다른 10여 가지 꽃을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줄기에서 열 송이도 넘는 꽃이 핀다. 신비해서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데 달팽이가 백일홍 어린싹을 너무 좋아하여 다 먹어치울 때도 있다. 달팽이 말고도 공벌레와 방아깨비 같은 것들이 차례로 계속 뜯어 먹으니 새싹 지킴이가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앉아서 본다. 텃밭 뒤쪽 작은 언덕에 심은 딸기는 익기만 하면 개미들이 달려든다. 일단 딸기의 끝부분을 흙에 묻어놓고 며칠을 파먹는다. 그러니 익으면 얼른 따는데도 내가 반, 개미가 반 수확하는 셈이다.
글밭에 씨를 뿌리고 거름과 물을 주며 잘 키우려고 해도 게으름, 상상력 또는 끈기의 부족 같은 천적들이 계속 방해한다. 그래서 좋은 작품 하나를 손에 쥐는 건 어려운 일. 글 농사 또한 아쉬운 대로 반만 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자.
사람의 생각이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어서 내가 아끼는 것들에 벌레들이 더 극성인 것처럼 느껴진다. 매화나무에 꽃이 지고 나뭇가지가 부쩍 풍성해지면 곧 열매가 달리는데 야들야들한 새 가지엔 어김없이 진드기가 빼곡하다. 벌레들도 맛있는 부분은 잘도 안다. 이때는 진드기가 붙어 있는 곳만 계속 잘라내면 매실을 어느 정도 수확할 수 있다. 장미에도 잎만 공략하는 벌레가 있는가 하면 또 꽃봉오리만 파먹는 벌레가 있다. 약을 뿌려줘야 전체로 번지지 않지만 가능하면 장갑을 낀 손으로 잡아주려고 한다. 진드기로 고생하면서도 눈 오기 전까지 계속 피고 지는 장미꽃이 대견하다. 봄부터 초가을까지는 상추나 깻잎, 고추, 방아, 방풍, 부추, 쑥갓, 가지, 토마토 등이 항상 밭에서 자라고 있다. 그냥 뜯으면 된다. 한 줌씩만 뜯어서 샐러드 소스를 뿌려 먹는다.
집에 혼자 있다 보면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날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비가 오는 날 또한 비 맞은 잎잎이 더 푸르고도 싱그러워서 장화를 신고 우산을 쓰고 마당을 돌고 또 돈다. 이렇듯 겨울을 빼고는 마당에 있는 시간이 많다. 이젠 마당 없는 집은 상상할 수 없다.
종일 종종거리며 집안일을 할 때는 한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 “마음이 허락하는 대로 하자”는 쉽고도 어려운 원칙이다. 그러잖으면 탈이 나니까. 마음을 따라가야 몸 또한 편안하다. 졸음이 찾아오면 쫓지 않고 잠깐씩 달콤한 낮잠을 즐기기도 하고, 일은 하고 싶을 때만 한다. 하고 싶을 때 하면 능률도 오른다. 오늘 못한 일은 내일 하면 된다.
큰 걱정이 없어도 마음과 몸이 균형을 이루어 편안한 날은 며칠이나 될까.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 감당해야 할 많은 역할로, 다양하게 맺어진 관계의 밀고 당김으로 어지럽게 흔들리곤 한다. 이럴 때면 멀리 보며 중심을 잡아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면 흔들림이 좀 덜 느껴진다. 내가 나를 부축하며 다독이며 그렇게 또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