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타이테를 그려주고 있다(나혜경 산문)

-색연필로 그리는 마당

by 나혜경

땅의 힘


처음 마당에 잔디를 듬성듬성 심고 마당 전체가 어서 빨리 잔디로 덮이길 바랐다. 그때는 잔디가 촘촘한 집이 가장 부러웠다. 그즈음에 윗동네에서 사는 분이 잔디가 파고들지 않는 곳이 없어 아주 힘들다는 얘기를 해주셨는데, 그땐 그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확증 편향 이론’처럼 푸른 잔디 마당만을 상상하며 잔디가 어서 마당을 다 덮어주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2~3년쯤 지났을까. 그분의 이야기를 잘 새겨듣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얼마나 잘 뻗어 나가는지 텃밭이며 꽃밭, 심지어는 시멘트를 뚫고 번져나갔다. 그제야 잔디 막이를 구입하여 경계마다 심어주었다. 폭 15cm짜리를 쓰다 보니 흙을 제법 깊이 파내야 했다. 꽃밭을 침범한 잔디를 걷어내고 잔디 막이를 꼼꼼히 심다 보면 그동안 잘 자라고 있던 구근이나 줄기들이 상처를 입고 예뻤던 화단이 볼품없어진다. 다시 회복하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마당에 잔디를 처음 까는 사람들에게는 꼭 잔디 막이를 설치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것만 잘해줘도 살면서 큰 일거리를 덜 수 있다고 말이다.

5월 말쯤부터 잔디 깎기를 시작하여 서너 번 더 깎아주면 가을이 오고, 그때쯤엔 잔디가 더이상 자라지 않으니 관리 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처음 이사 온 후 몇 년은 잔디 사이의 풀을 대부분 뽑았지만, 이제는 뽑고 싶을 때만 조금씩 뽑고 잔디 깎을 때 같이 깎게 되니 그냥 놔둔다. 완벽하게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몸을 편하게 하자고 생각을 바꿨다. 그러나 텃밭은 풀을 뽑지 않으면 금방 풀밭이 된다. 그러니 얼른얼른 뽑아야 한다. 또 씨가 많이 달린 풀은 더 이상 번지지 않게 바로바로 쓰레기봉투에 버려야 한다.

텃밭 뒤쪽 작은 둔덕엔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있다. 그 아래에 딸기와 머위가 자라고 그 옆엔 씨앗으로 키운 차나무가 있어 9월부터 11월 사이에 흰 꽃을 피운다. 언젠가 토종 해바라기 씨앗을 심었더니 세 포기가 싹을 틔워 자랐는데 볼 만했다. 올해엔 열 포기쯤 자라고 있으니 얼마나 크고 멋있을지 기대가 크다. 봄에 생강도 묻어뒀으니 겨울엔 대추생강차를 끓여 마셔야지. 무화과 철엔 달콤한 무화과도 제법 따먹을 수 있다. 한꺼번에 익는 단점이 있지만, 때맞춰 오는 손님에겐 무화과 맛을 나눌 수도 있다. 텃밭이 없었다면 몸이야 편했겠지만 이런 소소한 즐거움은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 넓진 않지만, 마당과 텃밭이 없었더라면 땅의 위력을 잘 알지 못했겠지. 무엇이든 심어 놓으면 2~3년 안에 몇십 배 이상으로 불려주는 게 땅이다. 겨울엔 앙상했던 것들이 봄을 지나 여름에 접어들 무렵부터는 정글을 이룬다. 나무의 키도 쑥쑥 자라니 때론 톱질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이 땅의 조화造化다.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서로의 나이테를 그려주고 있다(나혜경 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