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연필로 그리는 마당
하룻밤 머물다 가는 집
이곳으로 이사 온 후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자고 갔다. 친척들은 물론 친구들과 처음 보는 사람들까지. 집 평수는 전에 살던 아파트와 비교해서 그리 넓은 건 아닌데 원룸 형식의 2층 열두 평이 있어선지, 아니면 마당이 있어선지, 아니면 마음의 평수가 넓어져선지 누굴 재우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누가 온다는 건 어찌 보면 굉장한 일이다. 내가 알고 있는 그와 내가 알지 못하는 그가 한꺼번에 오는 것이기에.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덜 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사실 부담스럽기도 하다. 특히 외국인 같은 경우엔 문화가 달라 잠자리나 식사를 어떻게 해줘야 편안하게 머물지 염려되기도 한다. 그래서 반가우면서도 조심스럽다.
한국 여자와 프랑스 남자가 동거하는 사이라는데, 쓸데없이 살짝 고민했지만 한 방에 묶게 했던 일도 있다. 또 열 명이 넘는 사람이 하룻밤 묵고 간 적도 있다. 어디를 가든 집 떠나면 고생이고 내 집만 하겠는가. 불편한 대로 하룻밤 머물다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부담을 덜고 더 편하게 손님을 맞기 위해 ‘나’ 중심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누군가가 머물다 간 후엔 조금 더 잘 해줄 걸 하는 생각이 남는다.
하룻밤 묵겠다고 하면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고요가 점점 두터워지는 저녁도 좋고 사람들과 두런두런 나누는 말소리도 좋고 별이 총총 돋는 맑은 밤도 좋아, 그런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다. 또 이른 아침, 신발을 흠뻑 적시는 이슬과 풀냄새에 물드는 기분을, 깊은 숲속에서나 들음 직한 새 소리나 더위가 곧 끝날 거라는 풀벌레의 우렁찬 전언을 고이 접어 가져가길 바라서다.
앞집에 큰 소나무 네 그루가 있었는데, 몇 해 전 번개를 맞아 두 그루는 베어내고 두 그루가 남았다. 주인은 남은 두 그루를 베어버리겠다고 했지만 내가 말렸다. 멋진 소나무가 있어서 집도 더 근사해 보인다고 말했더니, 다행히 나무를 베지 않았다. 내가 지켜낸 나무에 보름달이 걸리는 날은 넋을 놓고 바라보는 호사를 누린다. 그럴 땐 혼자 보기 아깝다.
2층엔 가전제품이 없다. 흔한 라디오도 TV도 없다. 오로지 고요만 채워 놓았다. 라디오나 TV가 없어서 허전할 수도 있지만, 하룻밤쯤은 매일 보고 듣던 것들을 끊고 옆에 있는 사람이나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도 좋겠다. 닭 우는 소리, 빗방울 소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는 다른 소음에 묻혀 도시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 소리다. 귀 기울이지 않아도 스며드는 소리들이 귀를 씻어주고 어지러운 마음을 붙잡아 줄 것이다.
이른 새벽, 잠이 깨면 꼭 마당으로 나가본다. 동틀 무렵엔 왠지 어제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리는 듯하다. 그래서 경건한 마음으로 마당을 서성이며 점점 또렷해지는 아침을 혼자 독차지하여 맞이한다. 그러니까 이때는 매일매일이 새롭다는 것을 느낀다.
도시에 살 때는 보지 못했던 별을 이곳에선 자주 본다. 한때는 별자리 앱을 깔고 잘 알지도 못하는 별자리를 찾으며 혼자 신났었는데. 도시가 지척인 이곳에 이렇게나 많은 별이 뜰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대여, 별이 쏟아지는 맑은 날도 좋고, 2층 서쪽 창에 보름달 뜨거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