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나이테를 그려주고 있다(나혜경 산문)

-색연필로 그리는 마당

by 나혜경

전쟁에서 승리하라

흙을 만지며 사는 일은 정말 좋지만 불편한 두 가지 정도가 따라오니 이는 풀과의 전쟁, 벌레와의 전쟁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계속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패하면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야 한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항상 세트로 온다. 몸이 건강하다면 풀과의 전쟁도 해볼 만하다. 그러나 어깨가 아프거나 허리가 아픈데 풀을 계속 뽑기는 어렵다. 그러니 조급함은 버리고 쉬엄쉬엄, 조금씩 해야 한다. 또 흙이 있으니 반드시 해충이 있다. 벌레를 보지 않고 주택에 살겠다는 건 불가능하다. 한 가지 벌레를 극복하면 또 다른 벌레가 나타난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여 집을 팔고 다시 아파트로 이사 가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어떤 사람은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어 시골로 갔다가, 벌레와 뱀한테 져서 우울했다고 한다. 나도 처음엔 벌레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제는 벌레를 잡거나 조금씩 무시하며 살고 있다. 무당벌레나 메뚜기, 사슴벌레 같은 것들은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도 있지만, 배를 바닥에 붙이고 기는 것들은 손가락으로 잡기도 어렵다. 그래도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이곳에서 계속 살려면 혐오 벌레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도 벌레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며, 그래서 함께 살아야 한다고. 좋은 것과 나쁜 것에 대한 생각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매번 몹시 흔들리곤 한다.

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습도가 높은 편이다. 우리 집 습도는 봄과 가을엔 45~60% 정도이며 여름엔 70~80% 정도이다. 장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도시의 아파트는 보통은 건조하여 실내에서도 빨래가 바싹 마른다. 아파트는 고층이어서도 그렇지만, 습도가 낮아서 벌레가 살 수 없는 환경인 것 같다. 이에 비해 주택은 습도가 높으니, 작은 거미들도 열심히 집을 짓고 산다. 그러니 아파트처럼 생각하고 주택으로 이사 왔다가는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청소를 자주 하여 거미집을 없애고 방충망을 잘 닫으면 큰 불편은 없지만, 그래도 어느 틈으로든 들어오는 것도 있다.

나무도 벌레들이 좋아하는 나무가 있다. 우리 집에 있는 과실수 중에 감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등은 벌레가 좋아하지만 무화과와 블루베리에는 벌레가 없다. 또 장미, 매화나무, 배롱나무 등은 진드기 같은 벌레가 많이 꼬이고 목련나무, 측백나무, 주목, 소나무, 남천 같은 나무에는 벌레가 거의 없다.

자연은 용감무쌍하다. 강추위가 오거나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어도 숨지 않는다. 그런 자연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대개 부지런하고 용감하다. 아파트에선 없는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문제들은 항상 내 손길을 기다린다. 손길이 닿은 곳은 안전하고 푸르르고 반짝반짝 빛이 난다. 그러니 씩씩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몇 가지 불편함을 감수하면 주택은 많은 즐거움을 준다. 햇빛, 달빛, 별빛, 바람결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이불과 옷을 널어 일광욕을 시키면 풀냄새가 난다. 햇빛과 바람이 드나들며 신선한 냄새를 채워주나 보다.

주택에 산 지 10여 년, 이쯤 살았으면 전쟁에서 승리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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