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는 꿈을 이룰 기회가 생겼다. 3주의 휴가를 얻었고 코로나 시국에 제주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대안이 없었다. 우리나라에 제주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렇게 한 달에서 일주일 부족한 0.75달 제주 살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도 명색이 제주 살기인데 방 한 칸에 사는 건 멋이 없고 집 한 채를 빌리기엔 돈이 없다. 또 방 한 칸이든 집 한 채든 혼자만 지내기에는 조금 외로울 것 같았다. 몇 날 며칠 에어비엔비를 들락거리며 멋과 돈과 외로움을 모두 채워줄 숙소를 발견했다. 나와 호스트와 다른 게스트가 각각 방을 하나씩 나눠 쓰고 거실에는 큰 개가 늘어지게 누워있는 그런 옛날 제주 집이었다.
이 곳에 있는 동안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창문을 여는 일이었다. 내 방에는 두 개의 큰 창문이 있었는데 침대의 가로 방향 창문에는 귤밭이 세로 방향 창문에는 너른 마당에 큰 조밤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이 집에서 맞이한 첫날 아침은 날이 아주 맑았다. 바로 카메라를 챙겨 와 집 주변을 구석구석 찍었다. 내일 찍을까? 하고 잠깐 고민하기도 했지만 여행에서는 미루지도 망설이지도 말아야 한다. 지금의 기분과 날씨와 빛과 바람은 절대 다시 만날 수 없으니까. 실제로 머무는 7일 동안 아침에 날이 맑은 날은 첫날뿐이었다.
첫날 느낌 그대로
제주에서 살게 된다면 예능 속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연예인 같은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다. 깜깜한 새벽에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깨어나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씻고 말리고 화장하고 통근버스에 올라타는 일반인의 삶이 아닌 알람 없이 일어나 창문을 열면 한강뷰가 보이고 개운 할 때까지 온몸을 스트레칭 한 뒤 따뜻한 차 한잔으로 멍 때리는 그런 이효리 같은 아침.
아침 햇살에 눈을 뜨면 한강뷰 대신 귤밭 뷰가 보인다. 기지개를 켜며 잠시 광합성을 한 뒤 주방으로 가 따뜻한 차를 우린다. 차를 가지고 밖으로 나와 조밤 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으면 조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파도 소리를 내어준다. 차를 다 마시고 방으로 들어와 애정 하는 라디오 '정지영의 오늘 아침'을 틀어놓고 요가 선생님이 된 마냥 몸을 이리저리 뻗어 본다. 바쁜 도시의 삶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지만 당분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이건 너무나 완벽한 아침이었다.
제주를 여러 번 방문했지만 늘 바다 주변에 머물렀었다. 특히 겨울이 시작되는 계절의 제주는 날씨에 따라 어쩐지 쓸쓸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귤밭 뷰는 날씨가 흐린 날에도 밝은 기운을 준다. 초록 주황의 선명한 조화가 아침을 기분 좋게 만든다. 덤으로 저녁에는 감성 전구가 무색하게 주황주황 귤이 전구를 대신해주기도 한다. 이번 여행으로 제주 하면 떠올릴 색이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