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남이 Feb 24. 2020

우리에겐 김사부가 필요하다

낭만 닥터 김사부의 리더십

낭만 닥터 김사부에 대한 이야기다. 시즌1에서는 병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치 충돌, 의료 종사자들의 고민들이 흥미로웠다면 시즌2에서는 병원 안에서 개 멋 부리는 닥터 부영주 김사부라는 인물에 더 흥미가 돋는다.


'이런걸 전문용어로 개 멋 부린다고 그러지. 다른 말로는 낭만이라 그러고!'



김사부의 리더십


돌담 병원의 신의 손 외과 과장 김사부. 응급 외상센터의 실질적인 책임자. 매일매일 급박하게 돌아가는 응급실에서 그는 상황을 완벽하게 진두지휘 한다. '오다 주웠다'의 전형인 츤데레 캐릭. 말도 곱게 나가는 법이 없고, 환자의 생명 앞에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진심은 '오다 주웠다'에서 툭툭 묻어 나온다. 그걸 이 드라마에서는 개 멋 부린다. 다른 말로는 낭만이라고 부른다.


츤데레가 무심히 던지는 '오다 주은 그것'은 우리를 왜 감동시키는 걸까. 그냥 대충 주워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유심히 관찰하고 살피고서야 나오는 '처방'인 것이다. 아마 그것은 상대조차 알지 못했던 그러나 가장 필요한 '어떤 것'일지모른다. 


김사부는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바쁜 사람이다. 생사를 오가는 환자를 매일 마주한다. 새로운 케이스 공부를 위해 논문도 봐야 하고, 장시간의 수술도 마다하지 않는다. 환자만 잘 살피는 줄 알았더니 동료까지 잘 챙긴다.



'싸울 때는 정정 당당하게 주먹으로 싸우지 왜들 그렇게 위험한걸 가지고 싸우고들 지랄들이야.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조폭까지 교육시켜야 하는 김사부



서울에서 의사 두 명이 내려왔다. 한 명은 수술 실력은 뛰어나지만 화도 많고 빚도 많은 젊은 의사다. 이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의 온기'이다. 한 번도 어른다운 어른을 만나보지 못한 그에게 '네가 나한테 와있으면서 뭐 하나 가슴에 담고 떠나야 할 거 아냐?' 하며 툭 던져 감동을 준다. 또 다른 의사는 수술 울렁증 때문에 수술실에서 자꾸 쓰러지는 병(?)을 가지고 있다. 이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다. 무심하게 '이 수술 네가 할 수 있지?' 내가 어시스트할 테니 해봐'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첫 수술을 주문한다.



'집도는 처음이지? 자, 집중하고 마음껏 해봐. 알았어?' '나한테 일일이 확인 받을거 없어. 이건 니 수술이야. 니 확신대로 해.'



이 수술 장면이 좋았던 이유는 김사부가 주는 지속적이고 안전한 피드백 때문이다. 수술 단계 단계마다 김사부에게 확인받으려 하는 젊은 의사에게 '이건 네 수술이야, 네 확신대로 하라'고 말해준다. 바쁜 와중에 후배를 위해 기꺼이 자기 시간을 충분히 내어 준다는 것, 수술의 주도권을 후배에게 완전히 위임해 주는 것, 그 과정에서 서두르거나 압박하지 않는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실력자 선배가 내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이야기. 모든 미생들이 바라는 경험일 것이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라는 그럴듯한 말 때문에 우리는 충분히 가르쳐 주지도, 충분히 물어보지도 못한 채 불안한 실력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차은재라는 수술 울렁증 캐릭터에 특히 애정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벽 뒤에서 직원들 얘기 엿듣는 김사부



김사부는 정말 할 일이 많다. '지금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공식적인 보고가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관계의 레이다를 켜고  팀의 미묘한 분위기를 계속 감지한다. 팀원들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서 '느낌적인 느낌'을 잡아낸다. 복도 끝에서 우연히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는 드라마 같은 일들이 일어나긴 하지만 김사부는 먼저 다가가 질문한다. '문제가 없습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리더는 종종 이렇게 이야기한다. '말을 하지 그랬냐고, 왜 이제야 말을 하냐고'. 그러면 우리는 되물어야 할 것 같다. '왜 묻지 않았냐고, 왜 감지하지 못했냐고'. 리더는 일의 진행만큼이나 조직원들의 미묘한 분위기를 알아차려야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받기만 한다면 절대 알아차릴 수 없다. 엉덩이를 떼고 직접 찾아가야 한다. 그래야 우연히 대화라도 엿들을 수 있을 것 아닌가. 팀의 일을 방해하고 조직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제거하려 노력해야 한다. 리더는 어쩌면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해야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김사부는 괜찮은 걸까?  


김사부는 적이 많다. 누구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는 참 재수 없는 캐릭터다.  적자에도 불구하고 돈 안 되는 환자를 계속 받는 의로움, 자신의 신념을 결코 굽히지 않는 뚝심, 김사부의 말이라면 법처럼 따르는 돌담 식구들까지. 그때그때 상황에 타협하고 마는 보통의 우리와 다르게 멋있는 건 혼자 다하니까. '우리 몰라서 안 하는 건 아...'



'재밌습니까, 그렇게 잘난 체 하면서 사람 무시하는 거 재밌어요?' 잔뜩 화가난 박민국



 시즌 2에서는 새로운 병원장 박민국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가 이번 시즌의 빌런이다. 본인의 능력을 넘나 확신하는 잘난 캐릭터다. 시골 돌담 병원이 해봤자 얼마나 하겠어 생각했다가 큰다친다. 김사부의 스탭에 탐을 낸다. 연봉을 올려준다며 자신과 함께 일하자고 꼬신다. (당연히 흔들리지만 당연히 아무도 안 넘어가는 전개가 펼쳐진다.) 돈으로 사람을 사려한 것도 당연히 안타깝지만 박민국은 다른 걸 놓쳤다. 김사부의 스탭이 대단해 보였면 그것은 다 김사부 덕이다. 김사부의 개 멋이 좋은 조직을 만든다.



김사부는 너무너무 힘들다. 김사부라는 절대적 한 명에 의지하는 조직은 과연 괜찮은 걸까? 극 중에서도 김사부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병원 식구들은 동요하고 불안해한다. 김사부가 없으면 돌담 병원은 끝인 것이다. 김사부가 짊어진 책임감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김사부를 보고 있으면 진심으로 고맙고, 대단하고, 미안하고, 걱정되고, 짠해진다.



'다들 김사부 때매 퇴근도 못하고 저렇게 서서 걱정들 하고 있는거 안보이십니까' 수쌤한테 혼나는 김사부



그렇지만 짠한 건 짠한 거고 돌담 병원처럼 성과를 잘 내는 팀워크를 만들려면 김사부처럼 헌신하는 사람은 무조건 필요하다. 주변에 잘 돌아가는 조직이 있다면 살펴보길 바란다. 그 조직에는 '김사부'가 꼭 있다. 리더가 아니라면 '김사부의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꼭 있을 것이다. (없는 것 같다면 탁월하게 잘 굴러가지는 않는 조직일지도) 실력이 출중한 건 기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민하게 팀원의 마음을 살피고 일의 본질과 방향을 끊임없이 행동으로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상황을 조율하는 그 사람이 우리는 꼭 필요하다. 김사부 본인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그가 해야만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혹시 그거 아세요. 나에겐 짐이 아니라 힘이예요. 돌담 식구들 전부 다요. 혹시 까먹고 계셨을까봐'


그럼 그토록 애쓰는 김사부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그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을까. 별 다른 신통한 방법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 무게가 짐이 아닌 지지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정도이지 않을까. 그가 지치지 않고 본인의 신념을 지켜갈 수 있게 믿음이라는 안전한 신호를 우리도 계속 보내줘야 하지 않을까. 김사부가 없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좋은 리더에게서 배운 좋은 경험은 우리 마음속에 무엇 하나는 남겨줄 것이다. 그 좋은 경험은 또 다른 김사부를 만드는 씨앗이 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