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Oblivion / Astor Piazzolla
비극적인 계절이라는 게 있을까?
펄 벅Pearl Buck의 대지The Good Earth에 나오는 왕룽王龍 가족에게는 계절이 비극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사람에게 비극적인 상황이 찾아오는 건 딱히 계절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비극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 겨울이라는 데에는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 같긴 하다.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가 남미 아르헨티나 출신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대표적인 탱고음악 Oblivion-망각은 여름날의 비극을 떠오르게 한다.
메뚜기떼가 휩쓸고 지나간 뒤, 정성을 들여 키운 곡식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여름날의 대지. 그 끄트머리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왕룽의 먼지를 뒤집어쓴 얼굴이 아련하게 보인다.
그 여름의 뜨거운 비극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를 뜻하는 Oblivion에 맞물린다.
황량한 들판엔 먼지가 날리고 마음속엔 슬픔 가득한 비가 내린다. 겨울보다 더 시린 여름날의 비극.
누군가 가슴속에 비극을 갖고 있다면, 계절과 상관없이 그 가슴에 비를 내리게 해 주는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