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반주 첼로 모음곡, BWV 1007~1012 / J.S Bach
인간은 기록한다. 삶의 방식과 사건들, 자신이 고안한 아이디어와 보고 느낀 것들까지.
인간이 뭔가를 기록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원시시대 동굴에서 발견되는 벽화처럼 그림을 이용한 경우도 있고, 문자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글로 남기기도 했다.
음악이 기록된 역사는 얼마나 되는 걸까?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쉽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음악을 기록한다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음악이 기록되기 위해서는 우선 음악을 논리적인 체계로 분석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음계와 리듬을 눈에 보이는 기호로 그리기 위해서는 실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음계가 정리되고 나서 음악가들은 자신이 만든 음악을 종이 위에 그리는 일을 해왔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는 1685년에 태어나서 1750년까지 살았던 인물이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음계를 정리한 것은 그의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다.
그가 죽은 지 139년이 지난 1889년, 13살의 소년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가 바흐의 악보로 추정되는 것을 발견한다. 소년 파블로 카잘스가 25세가 되던 해에 처음으로 공개적인 연주를 통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6 Suiten für Violoncello allein은 소리의 형태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첫 발견 후 35년이 지난 1924년, 파블로 카잘스는 역사상 처음으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녹음한다. 1717년~1723년 사이에 작곡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곡이 무려 200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요즘은 음악가가 아니라도 아이패드 하나만 있으면 음악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약간의 수고만 더하면 PC로 곡을 만들 수 있고 컴퓨터는 즉시 음악을 악보로 변환해낸다. 어쩌면 앞으로는 바흐와 파블로 카잘스의 관계와 같은 기록과 재발견의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한 대의 첼로로 반주를 포함한 선율을 연주하는 독특하고 난해한 기법의 이 곡은 지금도 결코 아무나 연주할 수 없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음악이다. 연주자들에게는 최고의 난이도를 가졌지만 청중에게는 친근하게 들리는 이 아름다운 곡은, 그러나 바흐의 친필 악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소년 파블로가 발견한 이 곡의 악보는 바흐의 아내 안나 막달레나Anna Magdalena Bach가 필사한 것이다.
파블로 카잘스는 96세로 죽는 날까지 매일의 일과처럼 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습했다고 한다.
마치 성배를 발견한 순례자처럼 그에게 이 곡은 음악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만들어진 악보가 사라지고, 아내가 필사한 악보는 100년이 넘어서 발견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공기를 진동하는 첼로의 소리를 통해 귀에 전달되는 아름다운 여섯 곡을 기억한다.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천재의 음악, 다시는 사라지지 않을 기억으로 기록된 음악을.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의 전곡 연주(연주시간 2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