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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람 Nov 20. 2017

스스로 선택한 추락

스콧 니어링 자서전, 조화로운 삶 / 스콧 니어링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1883~1983.8.24)은 1883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탄광을 운영하고 있었고 덕분에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하지만 그다지 절대적인 것 같지는 않다. 스콧 니어링은 부유한 환경 속에서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봤기 때문이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경영학으로 진로를 바꾸고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리고 경제학 교수로 그 대학의 강단에 선다.

첫 번째 해직解職은 그의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당연하게만 여겨졌던 어린이들의 노동착취를 비판했던 게 문제가 된다. 그 후 톨레도 대학으로 옮겨 정치학을 가르친다. 

두 번째 해직은 제국주의 국가들과 세계대전에 대한 비판 때문이었다. 미국이 대표적인 제국주의 국가였고, 그때는 매카시즘이 휩쓸던 시기였다. 그는 1919년 연방법정에 선다. 간첩 혐의였다. 1917년 발표한 반전反戰 논문 때문이었다. 정부가 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토를 달면 바로 빨갱이가 되는 시기였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실 '위대한 미국'에는 이보다 더 폭력적이고 무법천지였던 시절도 있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침묵하거나 빨갱이가 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스콧 니어링은 진실을 얘기하고 빨갱이가 된다. 배심원단의 30시간 토론 끝에 극적으로 무죄가 되지만 대학과 사회로부터 버림받는다.


1928년, 마흔다섯 살의 스콧 니어링은 스무 살 연하의 헬렌 노드Helen Knothe(1904~1995)를 만난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함께하지만, 20년의 세월이 흐른 1947년에야 정식으로 결혼한다.

그 이후의 삶은 우리에게까지 잘 알려진 이른바 '웰빙well-being'의 실현이다.

1932년 버몬트로 이사한 두 사람은 생계를 위한 4시간의 육체노동, 4시간의 지적 활동, 4시간의 친목활동으로 이뤄진 조화롭고 단순한 삶을 실천한다. 두 사람은 자연 속에서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동시에 저서를 쓰는 미래의 자연주의 지식인의 모습을 제시한다.


그들의 '웰빙'의 시작은 사실 경제적인 어려움이 큰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면 도시는 삶을 유지하기에 너무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더 이상 가르칠 교단도 없고 저서를 출판해줄 곳도 없는 스콧 니어링에겐 어쩌면 선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단순한 생계수단에서 그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들에게 건강한 육체와 함께 일관성 있는 깊은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한 50여 년간 두 사람은 변함없이 그 철학을 지켜냈고, 발전시켰으며, 책으로 펴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 

스콧 니어링이 죽기 2개월 전인 1983년 6월 29일에 촬영한 사진

죽음마저도 '웰빙'의 연장에서 맞이한 스콧 니어링은 100세가 되자 이제 떠날 때가 됐다며 식사를 중단한다. 그렇게 그의 죽음은 '웰다잉well-dieing'으로 마무리된다. 안타깝게 사고로 죽지 않았다면 헬렌 역시 100세를 넘길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삶이 시사하는 건 자연주의적인 삶이 주는 진정한 건강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탐구정신과 타인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자연과 함께하고 절제하며 단순한 생활을 유지하는 게 바로 잘 살고 잘 죽는 방법이라는 걸 보여준다. 

이제 현대의 대한민국에서 스콧 니어링은 교양을 넘어서 상식의 수준이 되었다. 그를 모르면 왠지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아이러니다. 당시 주류 정치인의 시각으로 보면 그는 미국에서 빨갱이 좌파 지식인으로 낙인찍혀 시골로 쫓겨난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보수주의자들을 포함한 전체 자본주의 지식인들의 교양이 된 것이다. 


타락한 문명세계로부터 스스로 추락을 선택한 스콧 니어링은, 이기심과 욕망에 편향되지 않은 본래의 모습을 찾아 사는 조화로운 삶 진짜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을 자신들의 인생을 통해 보여줬다.


"좋아 Good. "

또렷한 정신으로 죽음을 맞이한 스콧 니어링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미국 메인 주에 있는 두 사람이 직접 돌을 날라 지은 집. 지금은 굿 라이프 센터 Good Life Center 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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