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Die Musik / F. Shubert
생산성이라는 말은 어떤 한계를 연상시키는 힘이 있다.
언제부터 생산성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투입량과 산출량의 관계를 나타내는 이 말은 인간의 시간과 노동력이 얼마나 재화로 전환 및 측정되는가를 살피기 위한 말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삶을 물질적인 척도로 바라보는 근대 이후의 시각임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인간은 시간과 노동, 혹은 약간의 열정을 포함한 '재료'를 사용해서 '돈'을 만들어 내는 것에 가치의 중심을 두고 살아왔다. 아마도 생산성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시점에서는 '돈'의 개념이 그야말로 뭔가를 생산해내는 것과 동일시된 것 같다.
요즘은 음악과 영화, 스포츠 등이 문화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생산성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지만, 역시 전통적인 의미의 생산과는 조금 거리가 먼 게 사실이다. 노래 불러서는 돈이 안 되고, 공 잘던지는 게 먹고사는 것과 관계가 없던 시절을 지나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의미의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새로운 생산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30대 초반에 삶을 마감한다면 나는 무엇을 남겼을까?
일반적인 대한민국의 젊은 남성에게 30대 초반은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다녀온 뒤 몇 번의 입사 시험을 거쳐 겨우 한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자리 잡는 정도의 나이다. 이런 상황에서 뭘 남길 수 있을까? 물론 20대에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된 사람도 있고, 10대에 이미 천재 소리를 듣는 음악가도 꽤 많긴 하다. 하지만 200년 전, 그러니까 생산성이 그야말로 생산성을 의미하던 시대에 태어나, 생산적이지 못한 음악만을 고집하던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남길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는 일정한 수입도 없었고 경제적인 기준으로 보면 직업도 없었다. 그의 음악은 전혀 인정받지 못했고 출판업자들에게 헐값에 겨우 팔렸다. 아무것도 남긴 것 없는 짧은 삶, 31년. 그의 죽음도 그의 삶만큼이나 주목 받지 못했다.
만일 지금 그가 태어나서 그 당시처럼 작곡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의 작품은 가곡만 600곡이 넘는다. 요즘처럼 저작권에 대한 보호가 철저한 시대에 그렇게 완성도가 높은 위대한 노래가 만들어진다면 슈베르트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 이상의 돈을 벌었을지도 모른다. 헨드리크 빌렘 반 룬Hendrik Willem van Loon은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반 룬의 예술사'에 이렇게 썼다. "한 곡만으로도 작곡가를 유명하게 만들 수 있는 곡을 그는 무려 600여 곡이나 만들었다."
그렇게 가난하던 스무 살의 어린 음악가에게 후원자를 자처한 친구, 시인 프란츠 폰 쇼버Franz von Schober가 어느날 건네준 시는 음악에 대한 감사였다.
Du holde Kunst, in wieviel grauen Stunden,
너 아름다운 예술이여, 세상이 어두울 때마다,
Wo mich des Lebens wilder Kreis umstrickt,
삶의 잔인한 현실이 나를 옥죌 때마다,
Hast du mein Herz zu warmer Lieb’ entzunden,
너는 내 마음에 따뜻한 사랑의 불을 지폈고
Hast mich in eine bessre Welt entrückt!
더 나은 세상으로 나를 이끌었지!
Oft hat ein Seufzer, deiner Harf’ entflossen,
너의 하프에서는 종종 한숨도 흘러나왔지.
Ein süsser, heiliger Akkord von dir,
너는 언제나 달콤하고 신성한 화음으로
Den Himmel bessrer Zeiten mir erschlossen,
더 나은 시절의 천국을 내게 열어주었지.
Du holde Kunst, ich danke dir dafür!
아름다운 예술이여, 네게 감사할 뿐.
슈베르트 당시 유럽은 왕정복고, 보수반동의 시대로 불렸고 젊은 예술가들은 자유를 억압당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자유를 탄압하는 시절을 살던 슈베르트는 친구들과 함께 숨어서 자신의 음악을 들려준다. 슈베르티아데Schubertiade로 알려진 이 모임은 음악과 사교를 목적으로 했고 역시 생산적이지는 못했다.
생산의 개념이 돈의 개념을 넘어설 수 있다면, 아마도 그 상위 개념은 감정을 지나서 영혼에까지 다가가지 않을까? 슈베르트의 음악을 새로운 생산성에 기준해서 보면 최고의 상품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어쩌면 슈베르트는 새로운 생산성의 기준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 시기가 200년이나 지난 다음이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첫 번째 영상은 영화 가면 속의 아리아Le Maitre De Musique, The Music Teacher, 1989중에서 호세 반 담Jose Van Dam이 부르는 장면이다.
•두 번째 영상은 1996년에 스코틀랜드 에딘버러Edinburgh 어셔홀에서 녹음된 프리츠 분더리히Fritz Wunderlich의 목소리다. 분더리히는 세계적인 명성과 아름다운 음반을 남기고 36세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