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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람 Mar 04. 2016

비장함의 끝에서 만나는 환희, 베토벤 '비창'

Sonate für Klavier No. 8 ‘Pathetique’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을 들으면 좀 심각해진다. 진지함을 넘어서는 심각함. 그런데 이 심각함은 좀 특이한 격이 느껴진다. 요즘 말로 클래스가 있는 심각함이랄까. 부정적인 소재와 결말을 예상케 하는 심각함과는 다르다.


베토벤 자신이 직접 붙인 Pathetique라는 부제는 프랑스어로 '비장한, 감동적인, 감격적인'의 뜻이다.

아마도 이 곡의 제목을 한자어인 비창[悲愴 마음이 몹시 상하고 슬픔]으로 번역을 한 건 일본 사람이겠지만, 슬픔을 상징하는 이 단어는 원래의 그 격이 높은 심각함과는 한참 동떨어진 느낌이다.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이런 오역이 여과 없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면서, 사실 비창이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한국인들에게는 그저 음악 용어 정도로만 쓰이는 말이 되고 말았다. 결국 원곡의 느낌과 작곡자의 의도는 심각하게 비틀어지고 말았다.


그거야, 어차피 음악을 들어보면 느껴지는 부분이니까…

베토벤의 심각함은 듣는 사람을 심각하게 만들지 않는다. 모차르트를 듣게 되면 즐거움을 넘어서 그다음에 느껴지는 게 있는 것처럼,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심각함을 넘어서 환희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총 20분이 넘어가는 연주시간. 3개의 악장을 모두 듣다 보면 비장함으로 시작해서 평화와 사랑을 지나 안타까움과 굳은 결심의 장면까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극적이다. 그리고 음악이 끝나면 가슴 깊은 곳에서 환희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걸 느낄 수 있다.


이건, 역시 베토벤식의 환희다.

28살짜리 천재 작곡가, 어린 베토벤이 들려주는 비장함 속의 환희.

깊은 밤을 더 어둡게 만들어, 그 속에서 자신의 영혼과 심각한 대화를 나눌 것 같은 음악이다.


베토벤의 여사제, 건반위의 암사자로 불리는 엘리 나이Elly Ney의 1957년 녹음이다.

1악장 Grave - Allegro di molto e con brio


2악장 Adagio Cantabile  


3악장 Rondo: Alleg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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