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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Apr 06. 2020

벚꽃이 마냥 반갑지 않은 이유

아토피 아이를 둔 엄마는 환절기가 무섭습니다.

"그만 긁어."

"간지럽단 말이야."


무아지경으로 다리며 팔이며 말할 것 없이 긁고 있는 아이를 보는 마음이 무너진다. 상처가 거의 다 나을만하면 긁어놓는 터라 다리가 접히는 사이 피가 마를 날이 없다. 아토피가 있는 첫째는 밤에 잠을 푹 자지 못한 탓인지 짜증스럽게 손톱 날을 바짝 세워서는 '벅벅' 온몸을 긁어댄다. 황급히 오일을 챙겨서 간지럽다고 하는 부위에 발라줘도 아이는 성에 차지 않는지 미끄러운 피부 위를 또 긁는다.


아토피 아이에게 환절기는 간지러운 곳을 긁느라 하루를 다 보낼 만큼 '가려움'과 싸워야 하는 계절이다. 예쁜 꽃이 피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기분 좋은 봄날, 싱그럽게 돋아나는 새싹과 달리 상처투성이인 아이 피부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토피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든 것이 '긁고 있는 아이'를 보는 것이었다. 아무리 뭉툭하게 잘라낸 손톱이라도 손톱 날을 세워 빡빡 긁어서 어떻게든 상처가 덧났다. 다 나아가는 곳을 긁어서 성낼까 봐 아이 손을 부여잡고 내가 대신 아이의 간지러운 부위를 살살 긁어주기도 했다. 집안일을 하다가도 전화를 하다가도 아이가 상처를 또 긁지는 않을까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연우야~"

"이제 그만 긁을게요."


하루는 아이 이름을 부르는데 그냥 앞뒤 없이 저렇게 대답을 했다. '아차!' 싶었다. 아이 이름만 부르면 그만 긁으라는 얘기를 얼마나 입에 달고 살았으면 저렇게 대답을 했나 싶었다. 내 몸이 간지러우면 내가 긁는 것이 정상인데 그걸 못 하게 하고 긁지 말라고 스트레스를 주니 아이가 가려움에 더 집착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아이 몸은 아이가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긁지 마' 대신 '긁고 싶은 만큼 긁어.'
그 대신 상처가 덧날 수 있으니까 조금만 살살 긁자. 그리고 너무 간지러울 땐 톡톡 때리는 것도 괜찮아.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 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아이도 마찬가지 일터, 모기에 물린 것보다 10배는 더 간지러운 아토피 피부를 긁지 말라고 하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싶었다. 아이 기질이 예민한 것은 타고난 것도 있었지만 피부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내 탓도 어느 정도 있었으리라. 차라리 간지러우면 긁어도 된다는 것을 허락하자. 그 대신 너무 무아지경으로 긁으면 상처가 덧나거나 새롭게 상처가 날 수 있으니 그 세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해 보기로 했다. 물론 잘 되지 않았다. 간지러운데 긁는 세기를 조절하라는 것 자체가 어쩌면 말이 안 되는 것 일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긁지 마'가 아니라 '긁고 싶은 만큼 긁어도 돼'라고 허락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내 몸을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 조금씩 조절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유치원이나 학교까지 쫓아가서 긁는 아이의 손을 부여잡고 있을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공기 좋고 햇빛 좋은 날에는 밖에서 신나게 놀기
집에서는 아이가 집중할 수 있는 놀이를 함께하거나 혼자 집중할 수 있는 놀이를 하도록 하기(블럭놀이나 색칠하기 등 손을 사용하는 놀이가 '간지러움'을 잊도록 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미세먼지가 좋고 햇빛이 쨍쨍 나는 날이면 아무리 추워도 밖으로 나갔다. 놀이터에서 아이가 즐겁게 놀면 하루 종일 온몸을 벅벅 긁고 있는 아이를 보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간지러움'을 잊도록 신나게 신체활동을 하고 즐겁게 놀면 밤에 조금 더 깊이 잠들었다. 밤에 더 많이 간지러워하는 아이를 위해 등을 긁어주며 잠을 재우곤 하는데 정말 피곤한 날이면 그런 나의 손길 없이도 잠드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긁는 행동'이 무기가 되지 않도록 하기

동생과 놀다가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거나 짜증이 나는 순간에는 몸이 가렵다는 사실이 생각나는지 가만히 있다가 몸을 긁곤 했다. 잘못을 해서 혼나는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온몸을 긁기 시작한다. 소아과에서 상담을 받아보니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안 되는 상황에서 아토피 아이들은 간지러움을 더 많이 느낀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긁는 것을 보기 싫어서 '알았어 알았어' 하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그러다 보니 '긁는 행동'이 아이의 무기가 되었다. 아이가 긁으며 짜증을 내도 '긁는 행위'에 집중하지 않고 '내가 훈육하려고 했던 행동'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긁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아 온 몸을 짜증스럽게 긁는 아이의 팔다리를 꼭 부여잡고 '훈육하려는 내용'을 전달했다.



벚꽃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 봄이 찾아와서 온 생명이 파른 파릇 새싹이 돋아나는데 아이의 몸은 상처 투성이가 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활짝 피고 나서야 올려다보았던 벚나무에 눈길이 갔다. 꽃송이를 감싼 껍질이 살짝 벌어져 꽃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득, 벌어진 틈이 첫째의 상처처럼 느껴졌다. 환절기마다 벌어지는 아이의 상처가 아물면서 아이는 그렇게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평소보다 유난히 밥을 잘 먹는 모습이 생각났다. 어디 얼마나 컸는지 볼까 싶어 키도 재어보고 몸무게도 재어본다. 봄날, 길을 거닐다 보면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예쁜 꽃들이 피어있다. 아이도 그렇게 커 간다. 온몸을 긁는 모습이 이제는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엄마, 나 오늘도 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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