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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Apr 07. 2020

진짜 내 딸 맞아요?

그렇다 웃는 입이 닮았다.

"아..., 배가 살살 아프네!"

"그래? 그럼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첫째때는 이러다 말았어. 일주일 동안 저녁마다 가진통 있었잖아. 이번에도 이러다 말겠지 뭐."

"둘째는 조금 빨리 나온다잖아!"

"나올 때 되면 진짜 엄청 아파. 아직 먼 것 같아."


첫째는 가진통을 무려 일주일간 겪었다. 처음 가진통을 겪던 날은 모두가 잠든 새벽이었다.  아무래도 배가 아프고 진통 주기도 짧아져서 이러다 내일 아침에 병원 가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거짓말처럼 아침이 되면 아무렇지 않았다. '아, 뭐지? 원래 진통이 조금 아프다 마는 건가?' 결국 예정일이 다 되어가도록 진짜 진통은 없이 가진통만 일주일째, 양수가 부족해지자 유도분만을 잡았다. 유도분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그냥 분만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 말씀에 하루 종일 거리를 쏘다녔다. 계단도 오르고 (내려올 때는 엘리베이터로 내려왔다. 내 무릎은 소중하니까!) 집에서 이상한 자세로 요가를 하면서 그렇게 '진짜 진통'이 걸리기를 기다렸다.


가진통 기간이 길었던 첫째라, 둘째는 출산이 빠르다는 말을 아무리 많이 들었어도 이게 진짜 진통인가 싶어 병원을 찾아가지 않았다. 주말이었던 지라 여유롭게 친정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중간중간 진통이 빨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현아, 아무래도 병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니야, 한참 멀었다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가봤다가 아니면 그냥 오면 되지 뭐."

"그런가? 그럼 혹시 모르니까 가볼까?"


주말 병원은 한산했다. 첫째도 주말에 출산해서 담당 선생님이 아닌 당직 선생님께서 출산을 도와주셨는데 '혹시 오늘도?' 하는 마음으로 진료를 기다렸다. 들어가는 길목에 또 한 번 배가 싸르르 아팠다. '아구, ' 하면서 잠깐 주저앉았다가 의자에 앉아 진료를 보는데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면서 말씀하셨다.


"배 많이 안 아팠어요?"

"네, 그냥 조금 싸르르 한 정도였어요."

"이제 곧 나올 것 같은데? 머리둘레가 어떻게 되지? 어휴, 많이 내려와서 머리둘레 잴 필요가 없겠는데. 지금 출산실로 올라가세요. 하마터면 길에서 나올뻔했어요."

"네???"


믿기지 않았다. '내가 길에서 아이를 낳은 사람이 될뻔했다고?' 믿을 수 없었다. 첫째 때 열 달 내내 입덧을 달고 살았는데 출산하는 날 까지도 내 위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끄집어냈다. 밤새 뒤척이는 남편 곁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보고 어떻게 하면 조금 덜 아플까 싶어 고양이 자세도 해 보고 짐볼도 타 보고 별 짓을 다 하면서 까맣게 새웠던 밤이 떠오르자 '둘째는 정말 금방 나온다니까!'라고 말했던 조리원에서 만난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화장실 잠깐 다녀와도 될까요?"

"아...., 급하세요?"

"네, 잠깐 가볍게 다녀오면 될 것 같은데...., "

"그럼 빨리 나오세요. 혹시 몰라서요."


'설마! 그렇게 쉽게?' 걱정하는 간호사들을 뒤로하고 간단하게 화장실을 다녀온 뒤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차림으로 갈아입고 익숙한 자리에 누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렇게 별로 아프지도 않고 나온단 말이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주 큰 착각임을 알게 되었다.


"힘주세요! 소리 지르지 마시고요!"

"읍!"

"자, 더 더더더더!"

"읍!!!!! 아!!!!!! 선생님 잠깐만요 잠깐만요 너무 아파요."


출산은 똑같이 힘들었다. 진통이 조금 많이 수월했던 것뿐이었다. 첫째 때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둘째는 그 과정을 알아서 인지 조금 요령을 피우게 됐다. 너무너무 너무 아픈 출산 과정을 거치면서 '둘째는 쉽게 나온다더라'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산부인과에 도착한 지 한 시간이 되지 않아 둘째를 출산했다. 첫째도 병원에 도착하고 3시간 조금 안돼서 아이를 낳았는데(초산 치고 병원 체류시간? 이 굉장히 짧은 편이라고 하셨다.) 둘째는 더 빨리 낳았다. 아이를 품에 안고 정신없이 출산을 마무리하고 회복실에서 남편이 찍어온 사진을 보았다. '응? 우리 딸 맞아요?'



  




"우리 딸 맞아?"

"아! 인큐베이터 들어간 건 잠깐 상태를 살펴보느라 그런 거래. 걱정 마."

"아니...., 너무 못생겼잖아! 진짜 우리 딸 맞아요? 왜 이렇게 못생겼지?"

"응????"


아이의 모습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제 막 출산한 엄마가 할 말은 아니었다. '아, 예쁘다. 진짜 우리 딸 맞지? 엄마가 되다니! 정말 행복해!' 같은 말을 하는 것이 '보통'의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찍어온 사진을 보는데 정말 못생겼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첫째가 워낙 작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던지라 상대적으로 더 크게 태어났고 양수가 충분했던 둘째는 못생겨 보였던 것 같다. 출산했다는 소식을 사진과 함께 가족들에게 전했다. 사진을 보내면서도 '혹시 아이가 바뀐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구, 복덩이네!"

"엄마, 진짜 못생겼지? 누구 닮은 거지?"

"그런 소리 하지 말어. 첫째가 워낙 작게 태어나서 그래. 애기들은 원래 막 태어났을 때는 다 저렇게 생겼어."

"그래요?"


'정말 그런 걸까?' 첫 아이의 경험은 기준이었다. 코와 입술이 비슷한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딸은 얼마나 예쁠까?' 기대했던지라 출산 후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즈그 엄마 어렸을 때랑 똑같아."

"정말?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던 것이 점차 '말이 돼'로 바뀌어 갔다. 태어났을 때 외모에 대한 기대가 낮았던 탓인지 크면서 유독 예뻐 보이는 둘째 딸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는 행동도 어쩜 그렇게 아들과는 다른지, 애교 섞인 말투며 안았을 때 착 감기는 것 하며 전부 사랑스러웠다.





"은수는 진짜 내 딸 맞는 것 같아."

"왜?"

"웃는 입이 진짜 똑같거든."


첫째와 둘째 사이에 자려고 누워서 꽁냥꽁냥 오늘 있었던 일, 내일 무얼 할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낮잠을 자지 않은 첫째가 먼저 잠이 든다. 아직 잠들지 않은 둘째를 꼭 안고 '엄마는 은수가 좋아!'라고 속삭이고 아이의 얼굴을 마주 보면 마주치는 눈빛에서 첫째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묘한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낀다. 그리고 씩 웃는 미소에서 나를 본다. 내 몸속으로 파고드는 딸을 꼭 안으며 둘째도 아들을 낳고 싶었던 나는 이런 순간마다 딸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그런데, 자기 그거 알아?"

"응? 뭘요?"

"자기랑 은수랑 웃는 입만 똑같은 게 아니라 울 때도 똑같아. 특히 입모양이"

"진짜? 이렇게?"

"응응!!! 맞아 정말 똑같아"


날 닮았다는 얘기에 더 정이 가는 걸까? 그래도 딱 하나, 딸이 날 닮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뽀뽀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에 '싫어!'라고 말하거나 가끔은 아무 말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도도함. 그러다가 쪼르르 와서 아무 때고 자기가 내킬 때 '쪼옥' 하고 소리 나게 뽀뽀를 하는 당당함.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새침한 딸이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아궁~ 우리 딸!"



다소 충격적이었던 둘째와의 첫 만남 ㅋㅋㅋㅋ
신생아의 기준이었던 첫째
내딸 맞아요. 우리 웃는 입이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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