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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Apr 09. 2020

잘 자, 사랑해

아유,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잘 자,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겨우 잠든 아이의 귓가에 조그마하게 속삭였다.

"으앙!!!!!!"

"아유,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아이를 낳고 가장 먼저 시도한 최초의 교육이 아마 수면교육일 것이다. '교육 :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기술이나 기능을 가르침'이라는 사전적인 정의에 의하면 적어도 그랬다. 아이를 낳기 전 수많은 육아서를 읽으면서 '아이가 스스로 자는 기능을 가르치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었다. 워낙 잠이 많은 터라 잠만큼은 편하게 자고 싶었다. 일단 졸리면 앞뒤 가릴 것 없이 무아지경으로 잠이 들어서  만삭 때 똑바로 누워서 잘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나에게도 반전인 어린 시절이 있었다.


"하여튼, 징그럽게 안 잤다니까! 울기는 또 얼마나 울어댔는지, 목청이 하도 커서 귀가 얼얼할 정도였어. 나중에는 하도 화가 나니까 달래주지도 않았지. 저러다 그냥 자겠거니 하고 내팽개쳐 뒀으니까. 그렇게 놔두니까 울다 지쳐서 자더라, 야."

"내가? 말도 안 돼. 지금 이렇게 잘 자잖아! 나는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았을 거야. 나 같은 딸은 열명도 키울 수 있을걸?"

"어이구, 그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너 같은 아들, 딸만 낳아라."


나의 어렸을 때를 부모님께 여쭈어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이 있다. 어렸을 적 나는 그렇게 자지 않고 울어댔다고 한다. 어떻게 해도 안되니까 아이가 울도록 놔두었는데 이때부터 엄마는 알게 모르게 벌써 수면교육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울다 지쳐야 잠들었던 나는 크면서 머리만 닿으면 잠드는 아이가 되었다. 하도 잠이 많아서 고3 때는 캐러멜이나 사탕 따위를 먹으며 잠을 쫓곤 했는데 그 덕에 하루가 다르게 살이 쪘고 양치를 안 하고 그냥 잠들어 버리기 일쑤였던 나는 남아나는 이가 없었다. 그 대가로 친구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시간에 조퇴를 하고 열심히 치과를 다녔다.




"저렇게 우는데 괜찮을까?"

"책에서 봤는데 수면교육 초반에는 어쩔 수 없다고 그랬어. 좀 울다 보면 지쳐서 잠들 거야."

"벌써 10분이 넘어가고 있잖아. 얼마나 울려야 되는 건데?"

"잠깐! 들어봐, 이제 울음소리가 조금 바뀌었잖아. 이제 점차 줄어들면서 혼자 잠들 거야."

"저러다 숨 넘어가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꼭 저렇게 울려야 돼?"


수면교육을 하겠다고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육아서에서 말했던 '그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론에 따르면 아이의 울음소리는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면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점차 울음이 줄어들면서 이내 스스로 잠든다고 했다. 그 이론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나는 아이의 울음이 조금이라도 '줄어든' 기미가 보이면 이제 곧 스스로 잠들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책에서 본 '그때'가 규칙적이지 않았다.


"그냥, 들어가 볼까?"

"계속 울려야 된다며?"

"그런데, 너무 많이 우는 것 같아. 처음부터 잘할 수 있나 뭐."


애써 아이를 달래러 들어가려는 나를 합리화했다. 예상과 다르게 울고 있는 아이의 소리에 귀 기울이던 우리 부부는 결국 아이가 잠들기 전에 방으로 들어갔다. 수면 교육가 정신으로 아이가 스스로 잠들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지만 아이의 울음소리가 어느 순간 너무나 애처로웠다.  


"엄마가 여기 있었어. 연우가 혼자 잠들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서 그랬어. 괜찮아. 괜찮아. 토닥토닥."


흐느끼는 아이를 토닥이니 울다 지친 아이는 얼마 안가 잠이 들었다. 가만히 아이를 눕히고 우리 부부는 밖으로 나와 수면교육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 나눴다.


"꼭 울리는 것 만이 능사는 아닌 것 같아."

"그래? 하지만 책에 그렇게 나와 있었는걸. 모유 수유하는 사람은 나잖아. 밤새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면 한숨도 못잖다고. "

"모든 아이가 책처럼 크는 건 아니잖아. 연우에게 맞는 방법을 다시 고민해 보자."

"휴, 알았어."


아이의 우는 소리가 듣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가 합의했던 한 가지는 '아이가 울 때 곧바로 안아주기' 이것 만큼은 하지 말자였다. 우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진짜 우리 부부를 필요로 할 때에 문제 해결을 도와주자는 것이었다.  그럼 이어지는 질문은 '아이의 울음을 어떻게 구별하는가?',  '몇 분이나 울려야 하는 것인가?' , '달래 줄 때는 안아주기 말고 시도해 볼 것은 없는가?' 등 이었다. 우리 부부는 진짜 수면 교육가가 되어 그날 아이가 울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알고리즘을 짰다.


먼저 아이 울음을 분석해주는 어플을 깔았다. (지금 생각해도 이런 것을 어떤 데이터로 계발한 것인지 궁금하다.) 아이가 울면 우선 상황을 판단하기로 했다. 주로 본능적인 것과 관련된 것이었다. 기저귀는 괜찮은지, 배고픈 건 아닌지, 졸릴 때가 되었는지, 심심한 것인지 아이 하루를 기록한 일지를 보며 전후 상황을 확인하기로 했다.


누워있는 상태에서 본능적인 것을 해결해 주었는데도 아직 울고 있다면 백색소음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이도 저도 안될 때, 정말 안아주기 직전에 사용할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바로 쪽쪽이. 어린아이였기에 계획에 없던 '쪽쪽이' 옵션을 추가했다. 우리 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짠 알고리즘을 즉각 실천하기 위해서 늦은 밤, 쪽쪽이를 사 오는 열정을 발휘했다.


열심히 짠 알고리즘은 가끔은 들어맞았고, 가끔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 점차 아이와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감각이 생겼다. 초반에는 어떻게든 책에서 배운 대로 아이를 '가르치려' 했다면 점차 일상에서 아이와 나만의 육아법을 찾아갔다. 그 과정에는 '기록'이 한몫을 했다. 잘 자는 날이면 '왜 잘 잤을까?' 기록을 살펴보며 고민해 보았고 다음번에도 비슷한 루틴을 이어갔다. 잘 안 자고 짜증이 많았던 날이면 '무엇이 불편했을까?' 원인을 찾아보았다.

예방접종시 소아과에서 궁금한것을 여쭤보며 아이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아이른 돌보며 쓰느라 휘갈겨 쓴 것이라... 악필을 변명해본다.


첫째 때는 이렇게 부단하게 노력해서 만들었던 '육감:육아 감각'이 둘째 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둘째는 그냥 잘 먹고 그냥 잘 놀고 그냥 잘 잤다. 신생아 시절부터 아기침대에서 혼자서도 잘 잔 둘째라 그런지 둘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둘째를 키우며 첫째가 적지 않게 유난스러웠다는 것을 느꼈다. 그 유난스러움이 엄마가 아이에 대해 공부하게 했고 '기록' 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었다. 예민했기에 '육아에 정답이 있을까?'를 고민하게 한 첫째는 첫째대로 그저 사랑스러운 둘째는 둘째대로 모두 사랑스럽다.



사랑해 잘 자. 쪽


잠든 아이에게 이렇게 얘기해도 다행히 이젠 깨지 않는다. 내친김에 뽀뽀도 한번 해 본다. '앗! 움찔거린다!' 아이가 깨 있을 때는 그렇게 재우고 싶은데 자고 있으면 깨우고 싶은 이 청개구리 심보. 이래나 저래나 입이 방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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