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현 작가 Apr 10. 2020

모두가 말렸지만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

'이것'을 지키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나한테 배워보는 건 어때?"

"다들 말리더라, 심지어 어머님도 말리시고 형님도 말리시는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지금 상황에서 강사한테 배우는 것도 좀 그렇잖아."

"그건 그래요."

"그리고 어차피 배우려면 빨리 배워서 익숙해져야 하고."

"음, 그렇지."

"내가 알려줄게. 연수비 아끼고 좋잖아?"


3월부터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기로 결정한 후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아이를 데리고 가고 데리고 오는 일이었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기관에 '당첨' 되어서 아침 일찍 남편 출근길에 같이 나갈 수 있게 연습을 해 보았는데 그만 아이들 건강에 탈이 났다. 7시 40분까지 문 밖을 나서는 스케줄은 아이들에게 무리였다. 이사를 가거나,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정말 마지막으로 선택하고 싶지 않은 선택지는 내가 운전을 하거나. 정말 고르고 싶지 않은 선택지를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작은 중고차를 한 대 샀고 남아있는 일은 운전연수를 받는 일이었다. 장롱면허 4년 차라서 차가 있더라도 굴러가게 할 수는 없었다.


버스타고 서울나들이를 갈 때는 나 보다 아이들이 먼저 잠들었다.

뚜벅이가 좋았던 나는 대중교통을 너무나 사랑해서 평생 운전은 안하리라 다짐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나를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주는 그 안락함을 평생 누리고 싶었다. 창 밖을 보면서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것도 잠시, 눈을 감고 편안한 덜컹거림에 등받이에 기댄 머리는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세차게 흔들렸다. 그러다 방송 소리에 문득 눈을 떠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 마법 같은 순간이 좋았다.




"그래? 그럼 그래 볼까? 그런데...., 가운데 페달이 브레이크 인가? 아니다 엑셀이던가?"

"뭐???????????"


남편은 현재 나의 수준이 '운전'의 'ㅇ'도 모른다는 것을 황당한 질문 하나로 알게 되었다. 정말 그랬다. 운전 연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날부터 악몽에 시달렸다. 엑셀과 브레이크 페달을 헷갈려서 멈춰야 하는데 못 멈추고 자꾸만 여기저기 차를 들이받는 꿈을 꾸고 나면 눈을 뜨면서 벌렁대는 심장에 온 몸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그런 내가 운전이라니! 운전이라니!!!! 그것도 남편에게 운전연수를 받는 상황이라니!!!!!!


우리 부부는 열 명중 아홉 명이 말린다는 남편에게 운전연수받기를 도전했다.


"자, 시동을 걸 때는 가운데 페달을 밟고 차 키를 돌려야 해. 가운데 페달이 브레이크야."

"응 알겠어."


첫 질문 덕분에 남편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정말 초보운전자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부터 열 까지 세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남편에게 운전연수를 받은 결과 대 만족이다. 솔직히 나는 우리 남편처럼 운전을 젠틀하게 잘하는 사람을 만나적이 없다. 항상 깜빡이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했고 (그래서 깜빡이를 켜지 않고 끼어드는 차량을 엄청 싫어함.) 좌회전이나 우회전 시 차선을 잘 지키고 속도를 낮추는 것의 중요함, 차선의 가운데를 잘 지키는 것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덕분에 조수석에 앉은 나는 알게 모르게 운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고 연수하는 내내 내가 운전을 하는지, 남편이 운전을 하고 있는지 살짝 헷갈릴 정도로?! 남편으로 빙의되어 운전을 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맞지 않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 우물쭈물하면 뒷 차가 답답해해. 속도가 너무 낮은 것 같은데? 차 간격이 너무 넓잖아."

"차 간격이 넓으면 안 돼?"

"그럼 다른 차들이 사이에 끼어들잖아."

"다른 차가 끼어들면 안 돼?"

"그럼 가야 하는 곳에 늦게 가잖아."

"조금 늦는 것보다 안전하게 가는 게 더 낫지 않아? 약속시간에 넉넉하게 나오면 되지. 맨 처음 운전 배울 때 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 처음 운전할 때 너무 속도 내지 말라고. 답답하면 다른 차들이 알아서 비켜간데. 그 대신 초보운전 크게 써서 붙이고!"

"그래. 그럼 편한 대로 해."


운전을 잘하는 남편이 조수석에 앉는 것은 '답답' 한 일이었을 것이다. 남편의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신호등의 빨간 신호에도 일찌감치 액셀 페달에서 발을 떼고 속도가 줄어갈 즈음 서서히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다. 그리고 차 한 대 정도가 들어갈 간격으로 정지한다.


올해 초, 폐차를 시킬 만큼 큰 교통사고를 겪으며 얻은 교훈이다. 앞에 디크커버리 차량을 박고 보닛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에어백이 터질 만큼 큰 사고였다. 우리 차는 세 번째 추돌 차량이었다. 우리 차 뒤로 한대의 차가 더 추돌했다. 총 4중 추돌 사고였다. 그때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지금 건강하게 살아있지만 다리에 남아있는 흉터를 볼 때마다 그 날이 떠오른다. '안전거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던 터라 정지할 때도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멈춘다.




집에서 걸어가기엔 조금 멀고 버스 노선이 없는  곳으로 모래놀이를 하기 위해 남편 없이 운전을 도전했다. 유난히 모래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다. 앞에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액셀 페달에서 발을 떼었고 서서히 브레이크를 밟는다. 앞 차와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차가 멈춰 섰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내 차를 보며 문득 예전에 했던 심리테스트가 생각났다.


"나현아, 만약에 사막을 건너는 데 원숭이랑, 새랑, 뱀 세 동물을 모두 데리고 가야 된다면 어떻게 갈 것 같아?"

(가벼운 심리테스트랍니다.  결과가 궁금하신 분들은 스스로 대답을 해 보시고 아래 내용을 살펴보세요 ^,^/)







"음...., 나는 우선 원숭이를 업고, 새는 날개가 있으니까 알아서 날아오게 하고 뱀도 그냥 알아서 따라오게 할 거야. 사막이니까 스르륵 잘 올 거 같은데, 왜?"

"푸하하 하하하 아 진짜?"


평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간략한 심리테스트였다. 여기서 원숭이는 미래의 배우자, 새는 미래의 자식, 뱀은 돈을 뜻한다고 했다. 각각의 동물을 어떻게 데리고 가는지가 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준다는 것이다. 결혼하기 한참 전에 받았던 이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날개가 달린 짐승이 제 날개를 마음껏 펼쳐 날아다닐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새'에게 어느 정도 내가 보이는 거리에서 쪽으로 가야 할지 정도만 알려준다면 그걸로 내가 할 일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새'와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싶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붙어있는 요즘, 이 '안전거리'가 위험 수준으로 좁혀지기도 한다. 가끔은 내 어깨에 착 붙어서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기도 한다. '그래, 괜찮아. 힘들면 조금 쉬어가도 돼. 그..., 그런데 업고 있는 원숭이는 너무 무거우니까 이제 내려놓고 같이 걸어야겠다.' 처음 질문을 받았을 때 원숭이를 떠올렸을 때 아주 작고 귀여운 아기 원숭이를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히 업고 가야 한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원숭이는 이제 아주 많이 컸으니 같이 걸어야겠다. 더운 사막에서 달라 불으면 너무 더우니까 어느 정도 떨어져서 걷는 겄도 좋겠다. 내 어깨에 있는 두 마리의 새 중 한 마리도 어깨에 올려주면서.




"어어어 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거의 옆에 박을 뻔했어."

"아고 미안해 미안해요!"

"왜? 왜 그런 거야?"

"글쎄...., 잘 모르겠어. 옆에 차가 오나 안 오나 보니까 보면서 거기로 핸들이 같이 움직였나 봐."

"아 나는 핸들 똑바로 잡았는데 옆으로 가나 했지. 시선만 움직이고 핸들은 움직이면 안 돼요."

"응, 알겠어. 미안해."

운전 초보자의 조수석에서 가끔 느끼는 생명의 위협은 온몸에 전율을 선사했을 것이다. 도착지에 차를 주차하 전까지 수많은 마음속에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남편에게 운전연수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순간만큼은 부부가 아니라 학생과 선생님의 '안전거리'를 유지했기 때문일 거다.


"그래도 나 잘했지? 처 음치고 잘하지 않았어?"

"으.., 으응 잘했어..., 그 그런데...., 음 있잖아. 집에 갈 때는 내가 운전하면 안 될까?"


아! 저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생각하니 조금은 짠하다.


그렇게해요!
고마워!
자기가 운전을 잘해서
덕분에 잘 배우네!
다음 고속도로 연수도
잘 부탁해요!
차고사도 지냈으니 이제 안전하게 운전하는 일만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잘 자, 사랑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