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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작가 Mar 25. 2021

더 이상 육아퇴근을 기다리지 않게 된 이유

꿈을 꾸어야 꿈을 이룰 수 있다


 홈클래스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미술 재료를 파는 사이트에서 동양화 물감 체험단에 선정되어 동양화공모전에 도전하게 되었다. 체험단에 선정되고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하기 까지 2주가 조금 안 되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작품을 완성하고 뒤에 두꺼운 종이를 덧대는 과정까지 하려면 2주라는 시간이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니 아이들이 잠이 들어야 온전하게 내 시간을 만들 수 있었고 육아퇴근만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아……. 침대에 누운 지 벌써 30분이 넘어가고 있어. 왜 이렇게 안자는 거야?’ 

  아이들을 빨리 재우고 공모전에 제출할 작품을 그리려 했다. 아이들은 잘 생각이 없는지 눈을 말똥말똥 뜨면서 배 위로 올라탔다가 내려갔다가 구르고 자기들끼리 깔깔거렸다. 어떻게든 잠들지 않고 버티려고 했지만 결국 아이들과 같이 잠들기 일쑤였다.     

 ‘아 또 잠들었어! 몇 시지?’     

 저녁 12시나 새벽1시 즈음 불현 듯 잠에서 깨면 잠든 시간이 아까워 아이들 몰래 일어났다. 몇 시간 자지 않고 일어나 공모전에 제출할 작품을 그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새벽 4~5시 즈음 아이가 깨서 엄마를 찾는 소리가 들리면 더 그리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아이를 다시 재우다 다시 잠들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다음날 아침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어? 어제 그릴 때는 이런 색이 아니었는데!’


 설상가상 밤에 그린 그림은 낮에 보면 다른 그림이 되어 있었다. 빛이 적은 밤에 그림을 그리다 보니 빛이 많은 아침과 낮에는 전혀 다른 그림이 되었다. 빛 양에 따라 색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부터는 안방 문을 꼭 닫고 거실과 부엌 불을 환하게 모두 켰다. 저녁 늦게까지 형광등을 환하게 켜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서는 아이가 깨서 재우러 들어갔어도 바로 잠이 들지 못했다. 정신이 말똥말똥해서 30분 넘게 휴대폰을 몰래 보다가 잠이 들곤 했다.   

 “당신 눈이 충혈 됐어.”

 “괜찮아요. 잠깐 피곤해서 그래.”

 “밤에 잠을 좀 자, 그렇게 안자면 나중에 큰일 나.”

 ‘그럼, 당신이 애들 좀 재워주던지.’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은 못했다. 자다 깬 첫째는 유난히 엄마를 찾았다. 아빠가 다가오면 더 짜증을 내는 탓에 결국 엄마가 다시 아이를 재워야 했다. 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 정정당당하게 시간을 요구하지 못했다. 그냥 알아서 짬짬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안 된다고 말한 적도 없고 내 시간을 가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끙끙거리며 집안일과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려고 발버둥 쳤다. 그러다 보니 오롯이 쓸 수 있는 시간은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  뿐이었다. 아이들과 남편이 모두 잠든 집은 평화로웠다. 조심조심 물을 뜨고 붓을 닦으며 그림을 그렸다. 

     

 “아! 차가워!”

 “그러니까 엄마가 식탁에 앉아서 마시라고 그랬지! 왜 들고 다니면서 쏟고 다녀!”     

 작품은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데 점점 체력이 바닥나는 것을 느꼈다. 평소 같았으면 ‘괜찮아. 닦으면 돼.’ 하고 말 일이었는데 아이가 저지른 작은 실수에도 짜증이 났다.      

 “엄마, 집에 있으니까 심심한데 우리 산책가자.”

 “밖에 미세먼지 안 좋아. 그냥 집에서 있어.”

 “그럼 나 책 읽어줘. 심심하단 말이야.”

 “그냥 혼자 읽어, 엄마 알아볼 게 있어.”

 “혼자 있으면 심심하단 말이야!”     

 휴대폰을 쥐고 공모전에 당선 되었다는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아이의 얘기를 귓등으로 들은 체 만 체 했다. 아이가 심심하다는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온 정신이 공모전에 낼 작품을 완성하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걸 못하게 하는 아이들과 남편의 작은 부탁에도 짜증이 났고 설상 가상 남편과의 대화도 줄어들었다.     

 “나한테는 짜증내도 괜찮은데, 애들한테는 그러지 마요. 애들이 무슨 죄야. 불쌍하잖아. 차라리 어린이집을 보낼걸 그랬어. 당신 시간이 너무 부족하니까 아이들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 알아보자.”     

 살얼음판을 걷듯이 긴장의 연속이었던 어느 날 남편이 아침밥을 먹다 울먹이며 말했다.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고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가정보육 이었다. 주변에서 다들 어린이집 보내라고 할 때 내가 조금 더 데리고 있겠다고 시작한 가정보육 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 속에서 마치 피해자 인 듯, 희생하고 있다는 듯 가족들을 향해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들, 남편과의 관계도 멀어지고 마음 편하게 그림을 그릴수도 없었다.    

 “집에만 있으니까 심심해.”

 “오늘은 미세먼지가 안 좋으니까 놀이터에서 놀 수는 없고, 우리 도서관에 갈까?”

 “좋아!”     

 이도저도 아닌 하루를 보내느니 아이들이 낮잠 자기 전 까지는 온전하게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면 짜증이 더 많이 늘었다. 우선 아침을 먹고 나면 집 밖으로 나갔다. 가장 편한 곳이 도서관 이었다. 어린이 자료실은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었다. 소풍을 가듯 도시락을 싸서 도서관에서 아침 시간을 보내고 휴게실에서 점심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둘째는 잠이 들었다. 5살이 되어가는 첫째는 점점 낮잠이 줄어들어 낮잠을 자지 않는 날도 있었다.     


 “연우야, 잠깐 혼자 책도 읽고 레고 가지고 놀 수 있지? 엄마 그림 완성해야 하거든.”

 “엄마. 그럼 나도 그림 그리고 싶어.”

 “그래? 그럼 연우도 엄마 옆에서 그림 그릴래?”

 “응!”

 “엄마, 이거 봐. 색깔 예쁘지?”     

 아이들이 자야 내 시간이 생긴다고 생각했는데 꼭 자지 않아도 스스로 놀고 있으면 함께 있어도 온전히 내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첫째와 둘째가 모두 깨어있을 때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둘째가 잠든 시간 첫째와 오붓하게 둘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둘째와 함께 붓과 물감을 줄 때는 장난만 치던 첫째가 나름 진지하게 색을 섞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사이 편하게 공모전에 낼 작품을 그릴 수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시작했다. 우선 아이들과 충분히 애정 넘치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밥과 간식을 먹고 나면 아이들이 스스로 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충분히 잘 노는 시간에 엄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 것 이었다. 하루를 관찰하고 아이들이랑 놀 시간과 아이들과 함께 있어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배분하니 아이들을 방치한다는 죄책감도 사라졌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사이좋게 잘 노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웠다.     

 어떤 날은 아무리 애를 써도 내 시간이 나지 않는 날도 있었다. 잘 놀고 잘 먹었는데도 이상하게 아이들이 자주 싸우는 날도 있었고 하루 종일 엄마 껌딱지 처럼 붙어있는 날도 있었다. 공모전 마감일 즈음 되어서는 시간이 많이 부족해서 가까이 사는 여동생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그림을 그려 공모전에 낼 작품을 마무리 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게 쉽지 않은 나 였는데, 아이를 키우며 부탁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밤에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럽게 육아퇴근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한 침대에 모두 같이 누워 하루를 마무리 하고 함께 잠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자니 자다가 없는 엄마를 찾으며 깨는 아이들도 푹 자서 짜증이 많이 줄었다. 밤에 잠을 잘 자게 된 나도 아이들과 남편에게 덜 짜증내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 꿈이 생기면 보통 자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가장 중요한 체력이 부족해졌다. 체력이 부족해지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집중해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생겼다.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고 하루를 잘 마무리해야 하는 저녁 시간에는 체력이 방전되어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이들이 자야지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고정관념, 잠을 줄여도 괜찮다는 생각을 비틀어 보니 아이들과 함께 있어도 엄마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잠은 꼭 자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렇게 아이들이 잠들기만을 기다렸던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잠들며 육아퇴근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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