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현 작가 Mar 25. 2021

홈클래스로 육아 태도가 바뀌다

무기력한 엄마 일상을 실험하기 시작하다

 ‘혹시 불량일 수도 있으니까’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약국에서 테스터기 세 개를 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임신이 아닐 거야 하는 마음이 훨씬 컸다. 결혼한 지 딱 한 달 되던 즈음 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테스터기 하나를 꺼내 검사를 해 보는데 설명서에 나온 시간을 기다릴 새도 없이 선명하게 두 줄이 떴다. ‘아, 너무 빨리 두 줄이 되었으니까 아마 불량일거야.’ 아직 임신이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기에 테스터기에 두 줄이 순식간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테스터기가 불량일거라 생각했다. 물을 잔뜩 마시고 두 번째 테스터기를 확인했다. 또 두 줄이었다. 두 번째 테스터기 까지 두 줄로 뜨니 살짝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세 번 같은 일이 반복되면 믿을 수밖에 없다 했던가, 세 번째 테스터기 마저 검사를 하자마자 선명하게 빨간 두 줄이 보이니 그제야 ‘내가 임신을 했구나!’ 라는 것을 인정했다.      

  내 나이가 26살 이었다. 25살에 7살 차이나는 남자와 결혼하려는 딸에게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일찍 결혼을 하려고 해? 엄마처럼 살지 말고 좀 더 네 인생 즐기면서, 그렇게 살아.”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결혼하고도 충분히 내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신혼 생활 하면서 부부가 같이 즐기면 되는 거라고 답했다. 그렇게 내가 즐기고 싶은 신혼의 단꿈은 테스터기에 선명한 두 줄과 반대로 점점 흐려졌다. 나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채 엄마가 되었고 우리 부부는 이렇게 부모가 되었다. 며칠 전 퇴근 후에 같이 가파른 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며 거칠게 자전거를 탔고 삼겹살에 소주를 가볍게 기울였던 것이 떠올랐다.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나누었던 꿈같던 이야기들은 정말 깨면 사라지는 꿈처럼 흐려졌다.      

  임신을 확인하면서 바로 입덧이 시작 되었다. 거의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여자 치고는 167cm로 큰 키인 나는 임신초기 50kg까지 살이 빠졌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그래도 학교로 출근하고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학교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심각한 입덧 중에도 출근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을 챙겨먹었지만 그마저도 직장에 도착하면 화장실로 직행했다. 언젠가는 끝날 거라 생각했던 입덧은 열 달 내내 나와 함께했다. 심지어 진통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전날 맛있게 먹었던 전복죽을 모두 비워냈다. 열 달 내내 입덧을 하며 정상적인 위치에서 들어갈 것은 들어가고 나와야 할 것이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절절하게 깨달았다.      

 아이를 낳고 생물학적으로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부터 정말 신기하게 입맛이 돌았고 돌아온 입맛은 입덧의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이 만족할 줄 모르고 음식들을 입으로 집어넣었다. 아이를 낳고 한 달이 지나자 만삭 몸무게로 돌아간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몸무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건강한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그것을 건강하게 소화 시키고 이 영양분들을 아이에게 모유로 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모유수유를 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밤중 수유였다.      


 임신했다는 순간은 얼떨떨했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서서히 내가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가장먼저 한 것이 육아서를 사서 읽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과 육아서를 열심히 읽으며 공부했기 때문에 나는 정말 아이를 잘 키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이의 발달 과정을 예상하고 준비하고 싶은 마음에 공부를 했는데 우리 아이는 책 속의 아이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기까지 항상 예측 가능한 삶을 살았다. 열심히 공부하면 한 만큼 시험 결과가 나왔고 그 시험 결과에 맞추어 갈 수 있는 대학을 가게 되었고 그 결과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준비하고 노력하면 이루어졌던 삶을 살았더니 엄마가 되고 내가 예측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아이의 모습에서 더 큰 좌절감을 느끼게 되었다.     


 “수면교육을 잘 시켜야 나중에 엄마가 편하데. 울어도 그냥 혼자 잠들 수 있게 놔두자.”

 “저렇게 심하게 우는데 괜찮을까? 벌써 20분이 넘어가고 있잖아.”     


 책에 나온 것처럼 밤에 혼자 잠을 잘 수 있도록 수면교육을 하는 일부터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아토피가 있었던 연우는 밤에 더 가려운 피부 때문에 수면교육을 어떻게 하느냐에 관계없이 밤잠을 깊이 들지 못했다. 엄마가 곁에 있어야 잠이 들었고 등을 긁어줘야 잠이 들었다. 그런 아이를 백날 울려도 혼자 잠들기는커녕 더 예민해졌다.    

   

 “우와! 여보 연우 이 나오나봐 여기 하얗게 보이지?”

 “오! 진짜네?”

 “이제 이가 나오니까 밤중수유 끊어야겠다. 빨리 이유식도 알아봐야겠어.”     


 공부한 대로 아이의 이가 나오기 시작하자 밤중 수유를 끊기 시작했다. 연우는 또래보다 이가 빨리 나오기 시작했고 뱃구레가 작았던 아이라 밤중에도 배가 고파 깨서 울었다. 뱃구레를 키우고 싶어도 아이의 입이 짧았고 아토피가 있어서 이유식도 알레르기 반응을 확인하며 조금씩 먹일 수밖에 없었다.     

 수면교육과 밤중수유는 시작에 불과했다. 아이가 크면서 내가 예상하고 예측한 대로 크거나 행동하는 일을 거의 없었다. 대부분 나의 예측을 빗겨갔고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졌고 결국 무기력한 엄마가 되었다.     

 설상가상 아이 둘은 낳아야 한다는 생각에 둘째를 낳게 되었고 한 아이와 하루를 보내는 것과 두 아이와 하루를 보내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보통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는 어린이집에 보낸다. 하지만 연우는 아토피가 있고 잔병이 잦았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자주 아프면 집에 있는 둘째에게도 병을 옮길 가능성이 높았고 아픈 두 아이를 돌보느니 집에서 두 아이를 보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아이를 기관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은 접었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거나 잘못된 행동을 할 때면 ‘혹시 잘못 키운 거 아니야?’, ‘애착 형성이 제대로 안됐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 나타나는 문제 행동이 우리 아이에게 보일 때 마다  불안감에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미루게 되었다. 아이들이 빨리 커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꿈꾸는 나의 모습’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다음에야 즐길 수 있는 먼 미래의 것이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늘은 무의미했고 무력했다. 그냥 빨리 아이들이 크기만을 바랐다. 아이들이 크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선 좋은 엄마, 무엇이든 잘 해내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틀에 나를 가두어 조금 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나라는 존재가 점점 사라졌다. 엄마라는 껍데기만 남아있는 것 같아 빈속을 채우려고 아등바등 어떻게든 엄마 노릇을 열심히 했다. 열심히 집안일을 했고 아이들을 먹이고 놀아주고 씻기고 다정한 엄마가 되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이상하게 채워지지 않고 자꾸만 비어가는 기분이었다. 항상 열심히 집안일을 하지만 싱크대에 설거지는 한가득 이었고 거실은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면서 내일이면 또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을 나를 생각하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집안 현상 유지를 위한 것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노력한 만큼 발전하거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언가 빠진 느낌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집안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채울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다짐으로도 채울 수가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비어가는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칠 무렵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들을 많이 비웠다. 가족들이 잠든 새벽 짐을 정리하다 한동안 집안 구석에서 먼지가 쌓여있던 화구를 발견했다. 임신을 했을 때 아이를 낳고도 민화를 그리겠다던 내 다짐과 지금의 내 모습이 비교가 되어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다른 것들은 팔기도 하고 나누기도 하고 버리기도 했는데 민화를 그리는 물감과 종이 붓만큼은 팔수가 없었다.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 마음에 홈클래스를 시작했다. 혼자 그리면 잘 안 그리게 되니 혹시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알려주면서 나도 수업 준비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환경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홈클래스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삶에‘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씩 자존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과의 관계도 행복해질 수 있다.’  말로만 들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말을 직접 체험해 보니 알 수 있게 되었다. 홈클래스를 시작하면서 되찾은 자존감은 아이들을 키우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를 키우며 부딪치는 문제에서 ‘왜 이런일이 생기는 걸까?’ 관찰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첫 시도부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결과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실패한 원인을 찾고 새로운 방법을 찾는 ‘오뚝이 육아’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알고 있는 방법, 배운 방법을 그대로 적용한다고 예상한 대로 아이가 행동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책이나 강연자의 아이와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도해 보는 과정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우리 아이의 상황에 맞게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 이게 중요한 게 아닐까? 수많은 육아서가 존재하지만 매일 새로운 육아서가 나오는 이유는 어쩌면 세상에 있는 아이와 엄마의 수만큼 다양한 육아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실패해도 다시 시도해볼 수 있는 힘. 그 힘은 엄마의 자존감에서 나온다. 홈클래스를 시작하면서 나는 자존감을 되찾았고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아이와의 하루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답 없는 육아에 우리만의 답을 찾아가며 나와 아이들의 일상 실험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아기와 함께한 홈클래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