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부엌 벽지 한 귀퉁이에 적힌 기쁨의 메모. ‘2003년도에 입식부엌 했다’ 바로 옆방 안쪽 아이의 성장 기록은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 좋은 재료다. 기쁨과 슬픔 그리고 세월을 담아낸 것들은 특유의 묵직한 에너지가 있다. 잠시 잊힐지언정 사라지지 않았다는 건 누군가의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시간을 쌓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이야기가 쌓였기 때문이리라. 벽지를 뜯는 와중에 우리가 집에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주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의 애정의 먹고 오래오래 함께 우리의 이야기를 간직해 주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