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비 만든사람 누구야? 너무 싫어
아들,
오늘은 아들의 이름만 불러본다.
우선 아침부터 걱정하고 걱정하던 리코더 시험에 통과한 것을 축하해. 삑삑 나던 소리에서 부드러운 소리로 바뀐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라 생각했는데, 드디어 '낮은 도' 소리가 나다니! 이제 아들은 천하무적?! 리코더 연주자가 되었구나.
시험을 앞둔 네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 구슬비 만든 사람 누구야? 진짜 구슬비 만든 사람 너무 싫어. 나 오늘도 리코더 통과 못 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말하는 너에게 "아들, 리코더 시험 볼 때 어떤 마음이야?"라고 물어봤지. "너무 싫어. 또 틀릴까 봐 걱정되고 긴장돼."라고 답하는 너에게 엄마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어. "틀릴까 봐 걱정하는 대신에 '내가 아주 그냥 확 틀려버려야지. 내가 얼마나 잘 틀리는지 이번 시험에서 증명할 거야!'라고 생각해 봐. 네가 가진 천진난만함으로 말이야."라고 말이야. 너는 좀 의아한 표정을 짓더라. 엄마도 맨 처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에서 이런 글을 봤을 때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거든.
'틀리면 어떻게 하지?'같은 마음을 '예기불안'이라고 하는데. 예기불안이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만약 그 일이 일어난다는 상황을 가정하고 걱정하는 것을 의미해. 이런 마음이 들면 우리 몸은 그 걱정을 실제로 일어나는 일로 만들어 버린단다. 그리고 '그래, 내가 또 틀릴 줄 알았어.' 이렇게 스스로에게 증명하려고 하거든. 다음에 또 불안해 하고, 이어서 그 불안을 증명해내고, 악순환의 박복이야.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은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 보라고 해. 내가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불안해하는 대신에, 그 일이 벌어진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상상하라는 거지. 빅터프랭클은 '타고난 유머 감각으로 자기 자신에게 초연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활용해야만 한다.'라고 말해. 틀릴까 봐 걱정하는 대신에 '내가 이 세상에서 리코더를 얼마나 형편없이 부는지 보여주겠어!'라는 유머감각이 오히려 불안감을 인정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거지. 불안한 감정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불안을 다루는 시작이란다.
엄마가 '왕창 틀려버릴 거야!'라고 말해도 된다는 건, 그만큼 네가 리코더 연습을 열심히 했기 때문이야. 연습을 안 하면 진짜 왕창 틀려버리겠지만,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보았잖아. 그러면 시험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그동안 애써오고 노력해 온 나를 믿어줄 수 있어야 해. 그 믿음을 가지는데 '유머'가 분명 큰 힘이 될 거란다.
엄마는 '구슬비'를 작곡해 준 작가님이 고마워. 특히 네가 소리를 못 내는 '낮은 도'가 들어간 곡을 만들어 주셔서 말이야. 작가님 덕분에 네가 '아! 나는 열심히 노력하면 이루어 내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몸소 깨닫게 되었으니까. '낮은 도'소리가 안나는 결과 덕분에 연습을 할 수 있었고, 그 연습과정 덕분에 리코더 시험 통과라는 결과를 낼 수 있었던 오늘을 기억하렴. 결과는 중요하고, 과정은 소중하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