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제2편 사물을 고르게 하다 - 털끝과 태산
사랑하는 아들 그리고 딸.
엄마는 요즘 엄마의 인문고전 스승님인 '줄리'선생님과 인문고전 벗들과 함께 '장자'를 필사하고 있어. 읽고 필사하고 생각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아들과 딸에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오늘은 이렇게 글을 써.
(너에게 해 주는 단단한 말 - 도 아직 쓸 말이 많이 남았는데 ^,^ 중간중간 함께 써 볼게.)
오늘 나누고 싶은 문장은 장자의 제2편 사물을 고르게 하다 에서 '털끝과 태산'에 나온 부분이야.
세상에 가을철 짐승 털끝보다 더 큰 것은 없으니 태산도 그지없이 작은 것이다. 갓나서 죽은 아기보다 오래 산 사람은 없으니 팽조도 일찍 요절한 사람. 하늘과 땅이 나와 함께 살아가고, 모든 것이 나와 하나가 되었구나.
사실 이 뒤에 더 깊은 뜻의 문장들이 이어지지만, 오늘은 여기 이 세 문장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해.
가만히 문장을 다시 읽어보렴. 어때? 조금 이상하지? 짐승의 털은 아주 아주 작은데,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하고 태산의 '太'라는 한자는 '크다'라는 뜻인데 태산은 작은 것이라고 하니 말이야. 갓나서 죽은 아이는 우리가 봤을 때는 삶이 금방 끝난 것인데, 이보다 오래 산 사람은 없다 하고, 700년이나 800년을 살았다는 전설적인 인물인 '팽조'도 일찍 죽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어.
이 수수께끼 같은 말은 무슨 뜻일까? 여기에는 사실 어떤 말이 숨어있어. '세상에 가을철 짐승 털끝은 (아주아주 작고 작은 것보다) 크고, 태산은 (아주아주 크고 큰 것보다) 작다. 갓나서 죽은 아기는 (찰나의 순간을 살다 사라진 삶보다) 오래 산 사람이고, 팽조는 (끝없는 삶을 살다 간 삶보다) 일찍 생을 마감한 사람'이 된다는 거야.
어떤 기준에서 보느냐에 따라, 큰 것이 되기도 하고 작은 것이 되기도 하며, 긴 삶이 되기도 하고 짧은 삶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지. 사물을 바라볼 때 한쪽만 보기보다 양면을 볼 줄 아는 넓은 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 아닐까? 이렇게 사물의 양쪽을 모두 볼 줄 알게 되면, 하늘과 땅이 나와 함께 살아가고 모든 것이 나와 하나가 된다는데 이건 무슨 말일까? 사실 마지막 문장은 엄마가 너희에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인 문장이기도 해.
엄마가 예전에 400명 정도의 사람들 앞에서 줌으로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 '잘하고 싶다'와 '잘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잘할 수 없는'상황이었지. 왜 그럴 때 있잖아. 잘하고 싶어서 시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때 말이야. 그렇게 묵직한 마음으로 답답한 날들을 보내며, 강의일은 하루 이틀 다가왔어.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하고 있는데, 그냥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았어.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
'나는 이 넓고 넓은 우주에서, 수많은 별 중의 하나인 지구에서, 여러 나라 중의 한국에서도 나는 아주 작고 작고 또 작은 곳에 발을 딛고 있는 아주 아주 작은 존재구나.'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우주의 관점으로 보면 정말 작고 작잖아. 그렇게 내가 작고 작고 작아지니까 나는 아주 작은 점이 되었고, 내 옆에 있는 나무도 아주 작은 점이 되고, 내 앞에 있는 아파트도 작은 점이 되는 거야. 갑자기 모든 것들이 작은 점이 되면서 전부 하나로 연결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단다.
그때 옆에 있는 나무를 바라보았어. 그때가 가을이었는데, 낙엽이 예쁘게 물들고 있었지. 잎을 떨구며 긴긴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말이야. 이 나무도 자신의 계절을 받아들이고 아름답게 물드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힘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 '하늘과 땅이 나와 함께 살아가고, 모든 것이 나와 하나가 되었다'는 장자의 문장이 어쩌면 이런 경험을 말하는 건 아닐까?
그렇게 모두 하나가 되는 감각을 느끼고 나니 오히려 무엇이든 해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기더라. 내가 짊어지던 마음의 짐도, 내가 작아진 만큼 작아지고 또 작아졌나 봐. 신기했어. 우주의 프레임으로 나를 바라봤을 때,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 내가 뭘 그렇게 고민하고, 걱정하고, 안달복달했을까 생각하니까 나를 짓눌렀던 문제가 아주 사소해져 버렸거든.
그때부터였나 봐.
가슴이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만나면, 멀리 바라보면서 내가 아주 작고 작은 존재라는 것을 되새겼단다. 하늘을 바라보며 '수많은 우주의 별들 중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는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갔을까?'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 말이야.
아들, 딸.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 때, 감당하기 버거운 문제가 생겼을 때,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렴. 그리고 우주 속 먼지처럼 작은 나를 상상해 보렴. 그렇게 나를 작고 작게 만들면, 너를 짓누르던 문제 또한 작아지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거야. 그때 너는 혼자가 아니라 이 세상과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 너희가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통해,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는 단단한 힘을 갖게 되기를 바라.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너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상과 하나 될 너희를 응원하며.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