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벌크, 어디까지 만들어 보셨어요?
결혼을 하던 해에 레고를 좋아하는 아이 아빠에게 레고 시티를 선물한 적이 있다. 하나씩 만들다 보면 몰입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고 조금씩 멋진 도시의 모습이 만들어지니 성취감도 느꼈다. 모든 레고를 만들고 전시장에 예쁘게 전시해 두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첫째가 레고를 하나씩 꺼내달라고 하더니 순식간에 레고 벌크가 되었다. 이후 다시 레고 시티를 재건하기 위해 레고 벌크 속에서 깨알 같은 부품을 하나씩 찾아가며 다시 만들었지만 금방 레고 벌크가 되었다.
레고 특성상 만들어둔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놀다가 떨어트리면 산산 조각이 나서 만들자마자 부서지는 날도 있었다. 전시장에 고이 모셔두는 게 아니라면 처음 모습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을 깨닫고 결국 레고 시티를 재건하는 일은 포기했다.
유난히 자동차를 좋아하는 첫째에게 '자동차를 사주지 말고 만들어주자!' 하고 레고 벌크로 자동차를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다행히 레고 시티에는 다양한 탈것들이 있어서 그 부품으로 새로운 탈것을 만들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돌아가는 것을 좋아했던 첫째는 레고 바퀴 사랑이 유난했고 바퀴 달린 자동차를 좋아했다. 아이 아빠가 레고 벌크로 만든 것이 퀄리티가 좋았고 첫째가 좋아하는 견인차를 만들어 주고 나서는 다양한 차종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아빠는 레고 지옥?!에 빠지게 되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빠가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아이는 '아빠 뭐 만들어 주세요'하며 아빠손을 잡아끌었다. 뒤섞인 벌크 속에서 새로운 자동차가 탄생할 때마다 아이는 참 즐거워했다.
그러다 첫째가 레고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 이거 보세요!' 하면서 만들어 온 모습이 제법 자동차 같았다. 그 자동차에는 아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아이는 이 자동차는 무엇을 하는 자동차고 이 장치는 무엇이고 사람은 어디에 타고 어떤 특수한 기능이 있는지 구구절절 이야기를 한다.
들으면서 맞장구를 꼭!!!! 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 내말 듣고 있어요?' 물으며 얼굴을 부여잡고 자기 얘기를 듣고 있는지 확인을 한다.
나도 레고 벌크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든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집. 나만 만들 수 있는 이상하게 생긴 빗자루. 집안 일과 요리를 맛있게 해주는 로봇. 엄마의 소망을 담은 것들이다. 자동차에 관심이 없어서 인지 자동차는 영 모양이 안나왔다. (아이가 계속 만들어 달라고 할 까봐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ㅋㅋㅋ)
매일 아이와 함께 레고 벌크를 활용해 다양한 '무언가'를 만든다. 레고 시티의 첫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지만 그 속에는 아이와 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엄마, 이건 여기에 꽂아야 해. 여기서 커피가 나오는 거야. "
"그래, (레고 작은 컵을 가져다 대면서) 사장님 저도 커피 한잔 주세요~"
"엄마, 들어가는 문을 붙여야지! 그런데 비가 오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사람들이 비를 맞지 않게 지붕을 만들자."
"좋아!"
"엄마, 바퀴를 붙이고 싶은데 잘 안돼. 어떻게 해야 하지?"
"높이가 낮아서 그런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레고 벌크 속에서 수많은 작품이 탄생한다. 첫째는 만든 것을 손에 쥐고 잘만큼 레고 사랑이 각별하다. 덕분에 침대 곳곳에 레고 조각이 있어서 자다가 찔리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다음날이면 고이 쥐고 잠들었던 작품도 다시 레고 벌크가 된다. 전날 애지중지 아꼈던 레고 자동차도 다음날이 되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레고 자동차가 탄생한다. (아이들은 익숙한 것보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 같다. 새로운 놀이, 새로운 경험, 새로운 장난감...,)
아이 아빠는 매일 최선을 다해 자기 전 아이가 손에 쥐고 잘 '탈것'을 열심히 만든다. 레고 벌크는 예전의 레고 시티의 모습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매일 새롭게 '무언가'가 된다. 오히려 모두 부서지고 낱낱이 흩어졌기 때문에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새롭게 탄생한 레고는 그전 보다 훨씬 멋있을 때도 있다. 예전의 레고 시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노력만 했다면 절대로 만날 수 없는 멋진 작품들이다.
샅샅이 쪼개진 레고 벌크가 멋진 레고 작품으로 완성되어 가는 모습에 마음이 뿌듯했다. 겉으로 보기에 쓸모없던 레고 벌크가 차곡차곡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손을 잡고 '엄마 레고로 뭐 만들러 가자' 말하는 아이를 보며 엄마인 나도 아이들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