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팝콘을 닮은 꽃
퇴근 후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참 사소한 것으로 마음 쓰고 있을 때 문득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잎사귀가 큰 나무. 정확히 말하자면 나무에 달린 꽃이다. 꽃이 예뻐서도 꽃이 핀걸 처음 봐서도 아니다. 분명히 꽃은 수명이 다하고 있었는데 마치 누군가가 하늘에서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다가 나무 위에 덜컥 쏟아버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길은 내가 매일 이용하는 경로는 아니지만 3일에 한 번 꼴로 지나다니는 곳이어서 풍경이 바뀌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난주만에 도 하얗고 몽글몽글했던 것이 눈에 선한데 넌 그새 팝콘으로 변해버렸구나. 발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꽃이 지면서 꽃받침과 꽃잎이 갈색으로 변한 것이 꼭 팝콘의 옥수수 껍질 부분과 흡사하였다. 대부분 꽃이 시들거나 질 때가 되면 지저분해지기 마련인데 떨어질 때마저 유쾌함을 선사하다니. 바닥을 보니 정말 팝콘이 흐드러지게 깔려 있어서 밟을 때마다 오도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마치 꽃이 '비록 나의 생명이 끝나가지만 이런 순간에도 나는 열심히 내 몫을 다할 거야 어때? 재밌지?'라고 외치는 듯했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이내 사소한 고민 따위는 잊어버리고 오늘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린 듯 웃음이 났다.
모든 꽃은 만개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한다. 아마도 제일 예쁜 순간, 사진에 담고 싶은 순간이라 여겨질 테니 말이다. 물론 봉오리가 막 움트기 시작할 때도 나름의 의미가 있어서 마음에 담고 눈에 담고 가슴에 담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개 후 시들어 결국 떨어져 버리는 꽃은 어느 누구도 관심은커녕 눈길조차 두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꽃은 나름대로 열매를 맺으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과정일 텐데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이제 앞으로는 나 혼자만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보아주련다.
위아래로 정신없이 감상하느라 길이 끝나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사진을 찍어둘 걸 후회가 된다. 하지만 괜찮다. 하루만 지나도 순간을 놓쳐버리는 만개 꽃과는 달리 지는 꽃은 내일도 모레도 한동안은 유쾌할 테니까.
(결국 다음날 퇴근길에 사진을 찍고야 말았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