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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란 도끼로 모가지를 댕강 내려치는 것과 같다.

어쩔수가없다

해고란 도끼로 모가지를 댕강 내려치는 것과 같다.

<어쩔수가 없다>의 주인공 만수가 회사 동료들에게 말한 대사. 구조조정을 겪는 사람들의 심정이 딱 이렇다. 어느날 갑자기 벌어진 일에 극심한 고통과 불안.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예전 기억들이 되살아나 불편했다.

내가 일했던 곳은 구조조정이 잦았다. 부서가 통째로 날아가는 일도 있었고 아침에 출근하며 인사를 나눈 분들이 한꺼번에 해고 통보를 받기도. 그런 일이 있을때마다 나는 책상 주변을 정리했다. 회사에서 나가라는데 주섬주섬 챙기고 있으면 모양 빠지니까. 그전까지 세상 물정 모르던 시절의 나는, 구조조정은 일을 못하는 저성과자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했다. 개인의 역량과 스킬이 부족한, 회사의 목표에 기여하지 못하거나 정치적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남의 이야기.

그런데, 아니었다. 개인의 역량과 상관없이, 어떻게 일했고 성과를 냈는가와도 상관없이 시장이 안좋고 예년처럼 ‘돈’을 벌지 못하면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일을 잘하고 못하고, 누구와 관계가 좋고 안좋고를 떠나 일터의 환경이나 시장 변화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일. 나에게 주도권이 없고, 조직의 결정으로 내 일의 미래가 결정되는 일.

나와 동료는 데스크에 나란히 앉아, 이럴줄 알았으면 기술을 배워 놓았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줄 모르는 회사원이라 큰일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며 한숨을 자주 내쉬었었다.

“이제 곧 내 차례일텐데,
회사 나가면 나는 뭐 하고 살지?”

막막하고 불안했다.
더이상 이런 상황에 끌려다니기 싫다,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마음이 현재 일의 시작점이 되었다.

영화에서 일터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제지 공장’은, 저물어가는 산업에서 회사 밖 환경 변화를 알아챌 새도 없이 헌신을 다하다 헌신짝이 되버린 사람들을 생각나게 했다. 모든 것이 스마트폰 안에서 벌어지는 세상에 종이는 쓸 일이 없어 사양산업이 된지 오래겠지. 갑자기 생각나 한솔제지 주가를 찾아보니 10년째 내리막이다.

비단 제지 회사만의 일은 아닐테다. 한국의 많은 섹터와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리막이고 주가는 줄줄 미끄러지고 있다. 그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어떻게 되는걸까. 거기서 진작 나올 판단을 잽싸게 하지 못한 개인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Chat gpt를 국내에서 2천만명이 쓴다는데 다들 AI를 자신만의 비서로 쓰며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는걸까 아니면 이걸 안쓰면 뒤쳐지는 것 같아 일단 유료 구독을 하는걸까. 결국 이 시대의 불안이 내 자식은 이런꼴 안당하길 염원하며 의사가 되길, 모두를 한방향으로 달리게 만드는 것 아닐까.

만수와 범모의 아내는 각각 꼭 제지 공장 일을 해야하냐, 다른 일을 하면 안되냐고 묻는다. 내 세상이 온통 다 그 안에 있는데 어떻게 다른 일을 해. 그들은 ‘난 전문가야’ 외치며 박스 밖으로 쉽사리 나오지 못한다. 내 전문성이 회사 밖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지 나오기 전까지는 모른다. 나 역시, 금융 시장 안에서는 전문가 취급을 받았지만 그 일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면 큰 의미 없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회사 밖으로 나와보니 할줄 모르는 일이 오히려 백만가지였다. 어찌나 우물안에 살았는지. 대부분의 회사인간이 이럴테다.

취향과 관점의 시대라지만, 이런 것들은 회사인간에게는 피부로 잘 느껴지지 않는다. 눈치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경쟁자보다 더 많이 더 잘하는 것이 표준화 시대의 공식이다. 점점 자신의 칼날이 무뎌진다. 무엇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채 프랜차이즈 등을 시작하거나 프리랜서를 꿈꾸며 조직 밖으로 나왔다가도 닥치는대로 일하는 이유다. 여전히 무색무취.

내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설정은 영화적이지만 그 모습은 우리 사회의 여전한 표준화 경쟁을 닮았다. 한국은 더더군다나 땅덩이도 좁아서, SNS가 아니여도 누가 뭘 어떻게 하는지 지척에서 다 보이고, 응당 이래야 한다는 말이 차고 넘친다. 이런 세상에서, 모두가 뛰는 트랙 밖으로 벗어나 나만의 트랙을 만드는 일은, 사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박찬욱 감독은 만수가 벌인 일들이 정말 어쩔수가 없는지 관객들이 생각해보길 바랬다고. 그런데 나는 오히려, 어쩔수가 없는 일들을 그래서 어떻게 해야해? 라는 질문이 남았다.

+이와중에, 박찬욱 감독은 훌륭한 크리에이터다. 자신의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다양한 의견을 이야기하게 만들었으니. 호평이든 악평이든 ‘평'이 있잖아? 대단한거다 그거. 어쨋든 엔터는 ‘관심'을 먹고 사는 업이므로.

+만수 같이 ‘댕강’ 목이 잘리는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결국은 개개인성이다. 나만의 일로 승부하는 것.

+이 영화를 이렇게 보는 나도 직업병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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