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더 좋은 회사를 다닐 자격이 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는 고단한 '취준'을 끝냈다는 뿌듯함과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습니다. 부모님도 자랑스러워하셨고요. 그렇게 이 회사를 ‘내 회사’라 생각하고 지난 15년을 열심히 일했어요. 어느덧 차장급이 되어 팀에서 관리자 역할을 맡게 됐는데요.
뒤늦게 커리어 사춘기가 왔는지 지난 1~2년 사이 점점 불안감이 커지더군요. 관리자로서 서류 작업만 하고 보고할 일만 많아지다 보니, 정작 필드에서 '내 일'을 하며 실력을 키울 기회가 없더라고요.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다보니 따라가기 벅차고, ‘디지털 네이티브’로 자란 젊은 직원들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요. 자기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들은 다들 승승장구하는 것 같은데.
15년을 내 건강 다 받쳐 열심히 일했는데 어느 순간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쌓아온 것이 금세 낡은 것이 되어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어떤 날은 너무 무기력해져서 퇴사 생각만 간절합니다. 작은 스타트업이라도 ‘챌린지’가 가능한 회사로 이직하는 게 좋을지, 내 사업을 시작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회사에서 ‘존버’정신으로 버티는 게 맞는지 고민입니다. 딸린 식구를 생각하면 이런 고민도 사치인가 싶고요. 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 차장님, 고민이 깊으시군요. 하지만 너무 우울해 하지는 마세요. 이런 고민을 하고 계신 분이 혼자는 아니랍니다. 제게 비슷한 고민을 토로하는 분이 정말 많습니다.
회사, 그것도 절대 망할 리 없어 보이는 대기업을 그만둔다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내가 스물이라면, 싱글이라면 얼마든지 배팅해 볼 수 있을 텐데, 지금 김 차장님은 잃을 게 너무 많다고 느낄 겁니다. 매달 25일 정확하게 들어오는 월급을 포기하려니 딸린 식구가 걱정이고, 15년이란 경력과 직급을 내려놓자니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과 노력이 아깝죠.
문제는, 지금까지의 안정적인 삶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것이에요.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승진하는 게 낫지 않을까?’
말이 쉽지 현실적으론 굉장히 어렵습니다. 대기업 회사원 중 몇 퍼센트가 임원이 되는 줄 아시나요? 2%입니다. ‘이사’가 되고 ‘상무’가 되느라 치러야 할 대가도 만만치 않고요. 무엇보다 지금, 팀을 관리하느라 ‘내 실력’을 쌓을 시간이 없다고 하셨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직원 관리는 당신에게 더 중요한 업무가 될 것입니다. 사내 정치 역시 불가피하고요.
대기업에서 임원을 하고 나오면, 갈 곳이 많던 시절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대기업의 성공 공식이 스타트업이나 중견 기업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많은 사람이 알게 됐거든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진짜 뭘 할 수 있냐"이지 "어느 회사의 어떤 직급이었냐"가 아닙니다. 제 전 직장은 J.P.Morgan이었습니다. ‘명함 빨’이 있는 회사죠. 그런데 회사를 나와보니, 제가 그 회사에 다닌 것에 다들 관심이 없더군요. 처음에는 호기심을 보이더라도, 결국 '제가 진짜 뭘 할 수 있는지’를 따지더군요.
시절이 수상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회사를 그만두라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은 생각보다 냉정하니까요.
대신 저는 ‘작고' '가볍게'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라고 조언해드리고 싶어요. 매번 회사에서 사업 계획 짜고, 예산 짜고, KPI 설정하잖아요. 김 차장님의 커리어도 그렇게 한번 설정해보세요. 만약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면, 비즈니스 모델은 확실한지, 업계에서 성장성이 있는지, 과연 돈을 벌 수 있는지 따져보세요. 이 회사가 내 인건비를 견디려면 얼마나 돈을 벌어야 하며 나는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수첩을 펴고 숫자를 적어가면서 꼼꼼히 계산해보세요.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차가운 논리로 시장을 살펴보는 것은 천지 차이의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새로 시작하려는 일에 확신이 있다면, 고객이 될 법한 사람을 만나서 물어보세요. 잠재적인 시장이 정말 존재하는지, 돈을 벌 수 있는지 말이죠. 52시간 근무로 퇴근 시간이 빨라졌다면 이렇게 활용해보세요.
만약 업계 내 다른 기업으로 이직할까? 생각한다면, 너무 좁게만 보지 마세요. 연봉이나 기타 조건이 비슷한 다른 '대기업'은 아마 성장기를 지나 쇠퇴기의 길목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직을 하더라도 고민이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이 업계에 새로 부상하는 회사, 잘 하는 중견기업, 스타트업은 어디인지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세요. 성장하고 싶다면, 여전히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다면 '성장기' 회사로 이직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김 차장님처럼 중간 간부라면, 아예 모르는 회사로 이직하기보다 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이직하게 될 공산이 크죠. 그렇다면 잊지 마세요. 친한 것과 '함께 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서로 합이 맞는지 테스트해보세요. 사이드 프로젝트로 작게라도 같이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지금 김 차장님이 불안한 것은, 앞으로 김 차장님 앞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여보자는 것이죠. 작고, 가볍게,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하다 보면, 곧 좋은 기회가 보일 겁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내 밑에 대리나 사원이 없어도, 나 혼자서도 일이 가능하도록 자기만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에요. 만약 회사에 남아 임원이 되더라도, 언젠가 회사에서 나와 홀로서야 하니까요. 100세 시대잖아요. 명함에서 회사명을 지우고도, 나의 일을 한 줄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 한 줄이 자신의 무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스타트업을 하다가 망해도, 한 회사를 오래 다녀도 당신을 찾는 사람은 반드시 있을 겁니다!"
[김나이의 커리어 상담소] 대기업 15년차 김차장 "내년에도 이 회사 계속 다녀야할까?"
* 이 글은 제가 중앙일보에 연재한 글의 일부입니다, 커리어 고민이 있으신 분들은 당신은 더 좋은 회사를 다닐 자격이 있다를 읽어보시거나, 저에게 메일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