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인인사이트] 10년 목표 묻는 회사 VS '멘붕'
더 좋은 회사는 채용 질문부터 다르다
① 업무를 진행하며 '멘붕'한 적이 있나요? 언제 어떤 일로 멘붕했고 어떻게 대처했나요?
② 공개적으로 본인의 실수 혹은 본인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한 적이 있나요?
③ 본인 기준에서 성공했던 프로젝트와 실패했던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④ 스스로 주도적으로 시작하고 결과를 낸 일에 대해 말해주세요.
⑤ 좋은 서비스란 어떤 덕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서비스를 만들려면 어떤 일을 해야할까요.
어느 날 저는 한 스타트업의 자기소개서 항목을 보고 '멘붕'에 빠졌습니다. 돌려 말하지 않는 직설적인 화법,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보다 현재의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개개인의 실제 생각과 경험을 묻는 구체적인 질문들이 지금껏 보아온 전통적인 기업들의 질문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에요. 전 직원이 밀레니얼이고, 밀레니얼을 타깃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회사는, 자기소개서 항목도 밀레니얼의 가치관을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대기업·중견기업의 자기소개서 항목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OO 취업을 선택한 이유와 입사 후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꿈’, ‘10년 후 이루고자 하는 목표’,‘성장 과정’을 묻는 회사들이 많았어요. 평생직장을 넘어 평생 직업도 없어진 밀레니얼에게 이 질문이 과연 얼마나 유효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질문에 진정성 있는 답변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출근길에 오르는 직장인들이 늘 가슴 속에 사표를 품고 다니고 신입 사원 퇴사율이 30%에 이르는 이유 중 하나는, 회사의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요.
입사 6년차 A는, 당장 이직할 것은 아니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계속 다니면 도태될 것 같다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A는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에, 팀 이름도 도전적인 ‘스타트업 TF’에 소속되어 있었는데요. 회사의 기존 프로세스에 막혀, 세상의 변화를 빤히 보면서도 그 변화의 방향에 맞춰 일을 진행할 수 없는 부분이 가장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의사 결정자들이 실무진을 믿고 맡기지 않아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부분도 이 회사에서의 커리어를 고민하는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옆자리 15년차 차장은 입버릇처럼 "나처럼 오래 회사 다니지 말라"고 한다 해요. A는 "지금부터 회사 ‘밖’ 커리어를 준비하지 않으면 큰일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3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에 성공한 B의 솔직한 이직 사유는, ‘구성원 개개인의 생각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사람을 쓰고 버리는 회사’ 때문이었습니다. B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정말 사랑했던 회사였어요. 그런데 회사가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는 대학 시절부터 그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는데요. 입사 지원자가 많아서였을까요. 임원들은 공공연히 “너 아니어도 여기 와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많아”, “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조직 구성원을 ‘존중’하지 않는 회사에서 미래를 그린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요즘 핫한 온라인 커머스 회사로 이직하려던 C는 이직 결정이 잘한 선택인지 고민된다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구두로만 입사를 확정하고, 연봉·근로조건을 포함한 계약서를 회사로부터 받지 못한 상태였는데, 이에 대한 이메일 문의 후 6 영업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면서요. C는 이런 회사로 이직해도 될지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담당자가 바빴을 수도, 내부 프로세스가 길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조직 구성원의 경험(Employee Experience)를 고민하고, 존중하는 회사라면 이렇게 대처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시작부터 불안과 불신을 안고, 얼마나 회사의 성장을 함께 고민하고 싶어질까요?
흔히 밀레니얼의 키워드를 #소확행, #워라벨로 꼽고, 이들이 예전 세대보다 일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장하지 않는 시대에 불안한 그들은 어느 때보다 자신의 실력을 쌓고 성장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요즘 애들은 포부가 없다, 멘탈이 약하다’고 결론 내리기 전에 왜 그들이 회사에 별 기대를 하지 않는지 그 실제를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인재가 없다’는 말을 하기 전에, 회사의 비전과 철학을 조직 구성원들과 제대로 공유하고 있는지, 그 철학이 구성원을 채용할 때부터 디자인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조직 구성원 개인에 대한 존중과 신뢰, 미래를 위한 성장과 변화는 사실 밀레니얼 세대만 원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