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장례식과 첫 번째 결혼식

어른의 경계에서

by NAIN


어른이 되면 처음 겪게 되는 것들이 없어질 줄 알았다. 적어도 가족, 친구, 직장 등 대다수의 나를 둘러싼 존재들은 새로움보단 익숙함에 가깝다 생각했다. 하지만 루틴 속에서도 매번 같은 하루는 없었고, 한 사람과의 인연도 시시각각 여러 관계로 변모했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늘 불변하는 진리가 있듯이, 불변하는 존재에도 늘 변하는 무언가는 있었다.



스물둘인가, 스물셋인가. 나이로 보면 이미 성인이 된 지 몇 년째였다. 하지만 한 사건을 계기로 아직 진짜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은 선배 어머님의 장례식 날이었다. 학번 차이는 났지만 1학년 때부터 같은 동아리였고,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배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늘 초승달 눈을 하며 웃고 있었지만, 본인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엔 누구보다 단호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 그는 완전한 어른이었다. 선배 어머님이 오랜 기간 병마와 싸웠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비보는 늘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몇몇 동기들과 함께 한 병원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급하게 가는 것이니 검은 옷은 입지 못했지만, 적어도 양말은 검은색으로 맞추자 했다. 여러 편의점에 가보았지만 적당한 양말이 없었다. 포기하려 하던 찰나, 지하철 노점상에서 파는 검은 양말을 발견했다. 아득한 우주처럼 정말 까만, 딱 우리가 찾던 그 검은 양말이었다. 주섬 주섬 신고 있던 양말을 벗고 새 양말을 신었다. 병원에 도착해 곧바로 빈소를 갔고 선배와 맞절을 했다. 절을 하는 동안 보이는 양말이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나름 뚜렷한 가치관을 가진 어엿한 성인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좋아했다. 학원보단 자습이 좋았고, 진로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정해왔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또 그만큼 혼자 많은 걸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 멀었다. 한참 멀었다. 하지만 그날 내가 선배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고작 양말 하나 바꿔 신은 게 다였으니 말이다. 처음 겪는 일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그동안 여러 이름 안에서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 앞에서는 자녀, 중고등학교 친구들에겐 그 시절의 청소년, 대학교에서는 학생이란 이름으로 사는 게 더 편했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나이를 더 먹었고 벌써 직장인 3년 차가 되었다. 하지만 요즘도 간혹 그날의 기억과 감정이 기억난다. 아끼던 친구가 결혼을 하고, 마냥 애 같던 친구도 독립을 한단다. 나도 모르게 '이제 어른이네'라는 말을 내뱉으며, 익숙함 사이에서 낯섦을 느낀다. 친구들의 변화를 통해 이제 나도 진짜 어른의 경계에 서있다는 걸 느낀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직은 어린 축에 속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하게 될 크고 작은 선택들에 이전과는 다른 무게감이 느껴진다.


처음 겪게 되는 일들은 너무 크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하나 둘 겪고 지나가다 보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다 괜찮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벌써 큰 결정을 앞둔 사람이 되었다는 게 낯설다. 나는 아직도 엄마 밥이 좋고, 아빠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는 게 편하고, 친구들과 시시한 농담을 하는 게 즐거운데 말이다. 벌써 몇 번째 사춘기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