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의 시작. 지난 20대를 돌이켜 보며
#손톱달이 찾아오면
이따금씩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드문드문 손톱달이 찾아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들을 되짚어 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중요했지만, 20대의 후반전으로 들어서며 전반전은 어떠했는지 돌이켜보고 싶었다. 졸업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긴 하였으나, 연말 휴가를 맞아 카페에서 글을 끄적이다 가까스로 해냈다. 스물부터 스물여섯까지 가장 의미 있었던 일과 그를 내포할 수 있는 단어들을 하나씩 뽑아보았다. 그리고 재미있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인생은 돌고 돌아 비슷한 양상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순환점 위에 서 있었다.
20, 자유
- 새내기
고등학교 때 공부에 대한 외부 압박이 큰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 공부를 잘하고 싶었던 학생으로서 느끼는 내적인 부담감이 있었다. 스무 살에는 그 무게를 벗어던지고 새내기라는 이름 안에서 자유를 즐겼다. 사회가 주는 이름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지만, 이때만큼은 그 울타리 안에 있어 좋았고 그렇기에 더욱 속하고자 노력했다. 술도 열심히 마시고, 쓸데없는 교양 수업도 들었다. 1학년은 나 밖에 없었던 와인과 하이쿠 교양수업이 떠오른다. 덕분에 막 학기까지 학점을 채우느라 고생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좋은 선택이었다.
21, 확장
- 교환학생
그저 어문계열 전공생으로서 전공학과 앞에서 부끄럽고 싶지 않아 교환학생을 떠났다. 사실 언어 외 다른 것은 크게 생각을 안 했는데, 1년 간의 시간을 통해 나의 세상이 넓어졌다. 매일이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이 많던 시기였다. 아예 사고방식이 다른 외국인들을 만나며 내가 있던 곳은 그저 우물 안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개인적인 성격은 물론 타인과 세상을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덕분에 지금은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 전공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22, 도전
- 대외활동
전 해의 경험을 토대로 내가 가진 세상의 너머가 궁금해졌다. 또 더 큰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도전을 하고 설령 실패를 할 지라도, 세상이 모두 무너지지는 않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그때부터 대외활동이라는 것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첫 시작이 쉽지는 않았다. 면접에서 5번 연속 떨어졌을 때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의 최선’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일단 수준에 맞는 것을 시작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능력도 커져갔다. 나 자신을 뛰어넘은 경험은 지금도 큰 자산이다.
23, 성취
- 인턴
여러 도전으로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처음으로 인턴에 지원을 했다. 이럴 수가! 원하는 곳 두 군데에 모두 합격을 해서 골라갈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느꼈던 성취는 아마 다시 느끼기 어려울 짜릿함으로 남아있다. 그간 온 길이 평탄하지는 않았어도, 틀린 방향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생겼고, 내면 깊숙한 곳에 단단한 자존감이 자리 잡게 되었다.
24, 수확
- 졸업과 취준
인턴도 했겠다, 이제 평안히 졸업 후 취업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졸업 전에 리더로서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어 도전해봤는데, 그게 대학 시절의 가장 큰 고난이 됐다. 생각보다 많이 드는 공수와 감정노동으로 많이 지쳤었다. 지인들에게 신경 쓰지 못하여 인간관계에 큰 어려움도 있었다. 곧이어 하게 된 취준도 순탄치 않았다. 스물넷이 얼마나 못나보였는지 모른다. 허나 그렇기에 이때 건져 올린 경험과 사람들은 여전히 내게 큰 동력이며 큰 자산이다. 그렇게 스물 넷의 막바지에, 한 회사의 전환형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부터, 4년 단위로 확장 - 도전 - 성취 - 수확의 사이클이 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마다 개개인의 박자에 맞는 인생의 사이클이 있다면, 그것이 나에겐 한 번의 확장, 그리고 그 후의 도전, 성취, 수확이지 않을까.
25, 다시 확장
- 신입사원
정규직 전환 면접에 합격했다. 한 대외활동 면접장에서 가고 싶다고 한 회사였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그렇게 노래하던 마케팅이나 브랜딩에서는 조금 비스듬히 길을 틀어 걷게 되었지만, 그간의 경험과 고민 끝에 선택한 길이라 마음에 들었다. 인턴과는 조금 다른 정직원이라는 타이틀, 그에 따른 무거운 책임감도 느껴졌지만 내 몫이 단단해지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돌이켜보니 25살의 내가 21살의 나와 매우 닮아 있었다. 스물 하나,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혼란스럽지만 즐거운 나날을 보냈던 때. 스물다섯, 낯선 회사와 사회인의 이름 안에서 적응해가던 때. 4년이라는 흘러간 세월 앞에서 외면과 내면은 모두 사뭇 달라졌겠지만, 할 수 있는 몫을 다하며 천천히 영역을 확장해 갔다.
26, 다시 도전
- 사이드 프로젝트
입사 1년이 지난 후에는, 퇴근 후와 주말에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전공 어문 시험을 다시 준비하고, 필름 카메라를 사고, 마카 드로잉 수업을 들어보기도 했다. 카카오 프로젝트 100에도 두 번 참여하여 각각 블로그와 영감 계정에 도전했다. 소소하지만 500명이 넘는 팔로워가 생겨 지금도 꾸준히 운영 중이다. 아쉽게도 브런치 작가에도 도전했지만 작년에는 낙방하였다. 재수의 결과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분명 좋은 결과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스물둘에 여러 대외활동에 도전했던 것처럼 스물여섯에도 다양한 분야에 뛰어 들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회사에서 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대외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학교가 내 중심이었듯, 회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회사 일이 잘 돼야지, 다른 활동들도 더 잘할 수 있다.
27, 다시 성취
-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스물일곱의 시작에 서 있다. 순환의 법칙에 따르면, 올해의 키워드는 '성취'이다. 성취라는 단어의 부피감이 있어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위에도 썼지만, 스물셋의 성취는 그 당시에도 살면서 다시 느끼긴 힘들겠다고 생각할 만큼의 무게였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전보다 감정에 무뎌지는 게 있다. 아픔에 익숙해지는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가끔 기쁨 앞에서도 무덤덤해질 때가 있다. 과연 나는 또 한 번의 성취를 느낄 수 있을까? 그때보다 더한, 아니 비슷하기라도 한 그 감정을.
반 오십은 이후 애매하다 느낀 순간이 많았다. 직장에 대한 만족감과는 별개로, 이렇게 살다 보면 끝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다시 돌이켜보니 그저 나의 세상이 한 단계 확장되었고, 또다시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그 순환점 안에서 밖으로 이탈하지 않고, 나만의 사이클을 계속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득 이 순환점 밖에도 더 나은 세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건 뭐, 차차 알아가 봐야지.
어쨌거나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제야 2020을 놓아줘 본다. adios,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