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를 마주하기

롤모델을 굳이 찾을 필요가 없는 이유

by NAIN


‘당신의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초등학교 때 학기 초가 되면 매년 받던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헬렌 켈러를 적곤 했다. 가지지 못한 것을 탓하기보단,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멋져 보였다.


그런데 성인이 된 이후로 인생에서 롤모델의 존재감은 사라졌다. 도저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 지금 가장 부러운 존재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한참 책상에 가만히 앉아 골똘히 생각한 결과, 머릿속에 단 한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로 '과거의 나'였다.


대학생의 나는 참으로 불안했다. 진로 고민에 파묻혀 잠에 들기도 하고,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인간관계에 지쳐 펑펑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만큼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또 솔직하게 표현했을 때가 있었을까 싶다. 나는 정말 잘 우는 사람이었다. 새벽 감성에 영화를 보다가 펑펑 울어서 다음 날 눈도 제대로 못 뜰 정도로 얼굴이 부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눈물이 잘 나지 않는다. 딱히 분노할 일도, 슬플 일도 없다. 영화를 봐도 예전만큼 공감이 잘 되지 않는다. 그저 많이 울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는데,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 불안했던 시절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참으로 무모했다. 마케터가 되고 싶었는데 실무 경험이 없으니 바로 인턴을 할 수 없었다. 인턴은 물론 대외활동 면접까지 줄줄이 떨어지고 있던 찰나였다. 그때, 관심이 있던 스타트업에 무작정 메일을 보냈다. 혼자 끄적거리며 만든 카드 뉴스를 보여드리며 일을 시켜달라고 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물론 그 제안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덕분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실무 피드백을 받아볼 수 있었다. 덕분에 이후 여러 대외활동이나 인턴 때도 자신감을 얻었고, 무사히 취업까지 하게 되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무모함 조차 지금 보면 기특하다.


참 신기하다.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거리감이 느껴지다니. 처음엔 이 사실이 스스로를 애석하게 만들었다. 왜 미래가 아닌 과거를 좇고 있는가. 그것도 인생에서 가장 불안하면서도 무모했던 시절을 말이다.


문득 휴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갈까 말까 고민하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에는 이 변덕스럽고 우유부단한 성격이 너무 괴로웠다. 그런 나를 보며 한 선배가 해준 말이 있다.


"인생에 아직 선택권이 많아서 그래."


앞으로 점점 더 많은 것들이 정해지고 나면, 변덕을 부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날이 온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 말은 사실이었다. 사실 세상을 많이 알아갈수록 두려운 것도 점차 없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곳곳에 도사린 것이 불안이었다. 취직을 하는 동시에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안정이었다. 일종의 도피였다. 그냥 회사, 집을 반복하는 삶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같은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다면, 혹시 뛰어보기를 시도해봤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평소에 걷기만 하면 당연히 넘어질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없다. 많은 실수는 곧 그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도전했느냐를 보여주기도 한다. 안정적이면 마냥 편할 줄 알았는데 정말 그냥 가만히 있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과거의 나를 마주하다 보니, 다시 현재를 살아갈 자극을 얻었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사이드 프로젝트'가 유행 중이라고 한다. 퇴근 후 여유 시간에 평소 도전해보고 싶었던 활동을 해보는 것이다. 말 그래도 '사이드'이기 때문에 실패해도 괜찮다.


나 또한 요즘 동력을 얻어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도전해보고 있다. 마카 드로잉 클래스도 들어보고, 필름 카메라도 찍어보고, 블로그도 다시 열었다. 독서모임 사람들을 만나며 회사 밖 커뮤니티 활동도 하고, 아침마다 요가도 한다.


의식적으로 하는 일들이라 마냥 편하진 않다. 하지만 어느 순간보다도 지금의 내가 이 시공간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처음에는 롤모델이 과거의 나인 게 조금 서글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타인을 선망의 대상으로 두고, 남과 닮아가려 하거나 비교하는 것보단 정신 건강의 이로운 방법이 아닐까? 나의 비교 상대는 오직 나뿐인 것이다.


어제의 나보다 한 뼘 더 성장하는 나를 꿈꾸는 삶. 그래, 이게 진짜 내가 원하던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