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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반 Sep 07. 2023

눈 맞춤 (2022.12.13)

플로라 보르시, Animeyed


플로라 보르시, Theia


나의 작은 동서 현우씨는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어릴 적에 집에서 소를 키웠는데, 내가 봤어. 그 소가 눈물을 흘리는거야. 도살장에 끌려가면서 눈물을 흘리는거야. 그리고 안가려고 발버둥치는데, 그 때부터 소고기를 먹으면 다 오바이트해." 그는 동물 보호론자도 채식주의자도 아니다. 그런 어려운 논제에는 사실 큰 관심이 없다. 그는 그저 삼겹살도 치킨도 좋아하는 보통 한국 남자다. 그런 그가 유독 소고기만 못 먹는 건 소와 눈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소와 눈을 맞추고 결정적 순간을 교감하는 것. 그것이 그의 눈을 통해 시신경을 타고 뇌를 마비시켰다. 평소에는 아무리 바라보아도 멀뚱멀뚱하기만 했던 그 소의 눈이 죽음이 임박한 순간 모든 생명력을 뿜어냈고, 그것이 어린이 김현우의 눈에 닿자 그의 뇌와 마음에 접속했기 때문이다.



눈을 맞추고 인생이 변한 것은 현우씨만이 아니다. 1950년대 미국의 알도 레오폴드는 산림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었다. 늑대들이 사슴을 자꾸 잡아먹어서 알도 레오폴드와 사람들은 총을 들고 늑대를 사냥하기 위해 나섰다. 그는 늑대 혐오자였다. 어느날 알도 레오폴드는 늑대 한 마리에게 총을 쏘았고 쓰러져서 피를 흘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 늑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죽어가는 늑대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알도 레오폴드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늑대의 눈에서 꺼져가는 맹렬한 초록빛 불빛을 보았다. 그 속에서, 아직까지 내가 모르는 오직 늑대와 산만이 알고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생태학자가 되었고, 현대 환경윤리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 덕분에 세상은 생태계의 균형과 안정, 즉 '산처럼 생각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눈 맞춤의 중요성을 몇번 경험했다. 그 중 첫번째는 아내에게 사귀자고 처음 고백할 때였다. 같은 교회 누나 동생으로 20년이상 다녔지만 단둘이 데이트를 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지 싶다. 뜬금없이 전화를 하고 "어, 교보문고간다고? 같이갈래?" 무슨 용기가 났는지 갑자기 데이트를 신청해서 교보문고를 함께 가고, 지금은 사라진 인사동 까페 '사과나무'에 앉았다. 당시 내가 교회 청년 중에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다고 소문이 난 상태였다. 누나가 물었다. "석기야 근데 너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야? 여진이? 선미?" 우리는 오래도록 마주 앉아 스무고개를 했다. 눈을 맞추고. 내 생에 눈 맞춤이 가장 즐거운 날이었다. 그 날 나는 끝까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누나는 그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을 맞출 때 비로소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 눈을 들어 다른 사람을 보아야 한다. 고통 받는 사람, 낯선 사람을 보아야 한다. 외면하고 싶었던 그들의 눈을 보아야 한다. 동물들의 눈을 보아야 한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 희생시켜왔던 그들의 눈을 보아야 한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직면해야 한다. 모든 존재 안에 깃든 생명력을 보고 우리는 수많은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총천연색의 새로운 세계를 살게 될 것이다. 두근거리는 사랑의 눈으로 그들을 마주하자. 그리하여 그들 역시 우리 안에서 사랑과 지혜를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살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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