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를 걷는 그리스도를 보는 제자들 2023.8.16

물 위를 걷는 그리스도를 보는 제자들 (헨리 오사와 타너)

by 나비
the-disciples-see-christ-walking-on-the-water-1907.jpg?type=w1600


물 위를 걷는 그리스도를 보는 제자들




“여보, 상대방 측이 김앤장을 선임했대. 내가 김앤장이 쓴 답변서를 읽어봤는데, 잘 썼더라. 진짜 심혈을 기울여서 최선을 다해서 쓴 게 느껴져. 이기기 쉽지 않겠어.”




그 때부터였다. 아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날 우리는 다시 크게 다퉜다. 한창 설거지를 하는데, 출근 준비로 바쁜 아내가 옆에 와서 짜증을 가득 담아서 말했다. “나 일 그만하고 싶어. 당신이 집안 일을 세심하게 챙기지 못해서, 나도 일을 편안하게 집중해서 할 수가 없어. 당신 탓을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야. 그치만 그렇다고.”




“당신이 일에 집중을 못하는 거지 그게 내 탓이라는거야?” 마음 한 구석에 ‘아니야. 멈춰. 그러다 또 크게 싸울거야. 돌이킬 수 없다고’ 다급한 목소리가 있었지만, 내 입은 이미 말하고 있었다. “나도 지금 재택근무 중에 집안 일 하고, 애들 보고 있는 거라고!”




사실 나도 안다. 아내 마음에도 탈출구가 필요했다는 것을. 그런데 그 때는 나도 그걸 받아주지 못했다. 결국 아내의 뚜껑이 열리고 말았다. “내가 볼 땐, 당신이 지금 붙들고 있는 일 하나도 중요한 것 같지가 않아!” “뭐? 내 일이 중요하지 않다고? 두고 봐! 내가 이기고 말거야! 김앤장? 웃기지 말라고 그래!” 쾅!




방문을 닫고 들어가 한참을 혼자 앉아 있었다. 후회가 밀려온다.




나는 목사다. 그것도 건물없는 교회의 목사. 이름 뿐인 교회의 담임 목사다. 교단이 나를 담임목사로 보낸 교회는 사고 교회다. 그 교회의 이전 목사가 교단 재산을 통째로 사유화하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정직 징계를 받았다. 그래서 교단에서는 나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임시 예배 장소를 떠돌고 있다. 왜냐하면 그 징계 목사가 교회 예배당에 버젓이 남아 점거하고 있고, 몇 명 안되는 교인들과 가족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징계 목사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한 패를 이루어서 교단과 또 다시 소송 전을 시작했다.




김앤장의 답변서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아내에게 자신 만만하게 큰 소리쳤다. “여보, 백프로야 백프로. 쟤네 이길 수가 없어, 말도 안되는 걸 어떻게 이겨? 저 사람들 이제 끝났어. 완전히 망했어.” 저 사람들 이제 어떻게 하냐고 불쌍하다고 걱정까지 해주었는데, 김앤장의 답변서를 보고서 마음이 요동쳤다.




’아… 치밀하게 썼네… 안되는 걸 어떻게든 되게 하려고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했구나… 얘네 전략은 시간을 끌려는 거구나… 가처분 소송이니까 논점을 최대한 많이 펼쳐놓고 복잡해보이게 만들어서 시간을 끌려는 거구나… 판사가 조금만 허술하거나 하면 질 수도 있겠는데? 우리쪽 변호사가 쓴 것보다 두 배나 많이 썼잖아? 글쓰기도 비교되는데… 어떡하지?’




사실 나는 사고 교회로 떠밀리듯 자원했다. 교단 수뇌부에서는 내게 사고 교회에 가라고 했다. 나 역시 이제 단독목회를 할 만한 나이가 되었고, 더 이상은 부목사로 살기위해 교사 일을 병행할 만한 체력이 안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번이 아니면 수 년간 기회가 없을 수 있다는 판단에 ‘가겠다’고 답하였다. 그렇게,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과 조건들은 나를 사고 교회 담임 목회자의 길로 떠밀었다. 나는 그 길에 어떤 위험과 혼돈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길을 떠났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길 위에 있다. 나는 너무 순진했다. ‘일단 담임 목사로 파송 받으면 징계 목사는 포기하고 징계를 받아들이겠지. 그러면 나는 그저 목회만 하면 되겠지.’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사람들이 소리쳤고, 근거없는 음해를 받아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비난했다. 그 걸 전부 온 몸으로 받으면서 마음이 위축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소송전이 시작되었다. 빨라야 3개월 늦어지면 2~3년.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말을 듣는데, 내 주변에서만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아내는 나보다 감정의 진폭이 훨씬 큰 사람이다. 작은 슬픔을 보면 크게 함께 우는 사람. 작은 불의를 보면 크게 분노하는 사람. 친구의 작은 기쁨을 함께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 아내다. 아마도 내 마음이 위축될 때 아내의 마음은 너덜너덜 해졌을 것이고, 내 시간이 느리게 갈 때 아내의 시간은 멈추었을 것이다.




우리는 한동안 힘들었다. 정말 많이 다투었다. 매 주일마다 시간제 공간을 빌려서 우리끼리 예배해야 했고, 그 때마다 마음이 더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위로가 찾아왔다. 평소 존경하던 목사님이었다. “목사님, 우리 교회에 와서 오후에 예배드려. 아내랑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겠어? OO교회 모 목사님도 지금 같은 처지잖아? 힘을 합쳐서 같이 예배드려. 이럴 때일 수록 힘을 합쳐야지.”




자존심이 있어서 평소 같았으면 단 칼에 거절했을 텐데 생각해보고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지쳐있었다. 그 목사님의 제안대로 하기로 했다. 그러자, 그 때부터 아내와 아이들은 평안을 되찾았다. 웃기도 했고, 주일 예배를 기대하며 드리기도 했다.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응원과 위로를 받았다. 또, 이런 어려움이 없었다면 결코 받지 못했을 격려의 메시지들도 듬뿍 받았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 속에서 평안을 얻었을까? 김앤장 사건으로 다시 내 삶의 풍랑이 요동쳤다.




의심이란 한 눈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다른 눈으로는 바람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호수 위에 밝게 빛나는 무언가를 보았다. 환상이었을까? 아니면 유령이었을까? 제자들은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 없었다. 그분의 목소리와 메시지를 듣고 알 수 있었다. “용기를 내. 나 창조자가 너희와 함께 있어. 두려워하지 말으렴”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달은 베드로는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바다 위를 자신도 걷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한다. “오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베드로는 바다 위를 얼마간 걷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한 역풍을 보고 다시 바다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를 잡아 일으켜 함께 배에 올라탄다. 그리고 동이 터오른다.




돌아보니 나 역시도 딱히 베드로보다 나은게 하나도 없었다. 수많은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받고서 평안을 얻었는데, 그깟 김앤장이 뭐라고 겁을 냈으니.




예수님이 탄 배는 결국 갈릴리 호수 맞은 편 어딘가에 도착한다. 제자들의 목적지는 아니었을 수 있지만, 예수님은 그곳에서 내려 자기가 기획한 그림을 완성하신다. 그리고 계속해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기 위해 길을 떠나신다.




그저께, 다행히도 다시 나와 아내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비록 나는 늘 의심이 많고 믿음이 작아, 죽겠다고 난리 법석을 떨지만, 나를 잡아 주는 그 분 덕분에 다시 평안을 얻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로 정해질 지도 이제는 그저 두고 볼 일이다. 무더운 여름 한낮 파란 하늘 바다 한 가운데 천천히 떠 가는 배 썬베드 위에 누워 미풍을 즐기는 마음으로 나머지 시간을 보내야겠다. 그러면 언젠가 이 여정의 끝에 완성된 그분의 그림을 볼 수 있겠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옥 문을 여는 사람들 (202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