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m,2001 (마우리치오 카텔란)
지옥 문을 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조슈아가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일했던 OOO 대안학교는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로 각자 예명을 정하도록 했다. 그는 예명을 "조슈아"로 정했다. 예수님의 히브리식 이름이기 때문에 그렇게 정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는 내 옆자리에 앉고서는 먼저 나의 나이를 물어보았다. "동갑이예요" 이 말을 듣자 마자, 마스크로 가린 그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가면서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주름졌다. 조슈아의 눈동자 속에서 안도감과 기쁨, 싸늘함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그 날 조슈아는 나에게 오늘은 둘이서만 점심식사를 하자고 청했다. 나는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말했다. "조슈아, 우리 나이도 같으니까 친하게 지내요. 친구해요. 사석에선 말 편하게 해요" "그럴까? 그래 그럼. 좋다. 나 직장에서 누가 친구하자고 한 적 처음이야" 나는 존재의 평등이라는 토대에 뿌리를 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소통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 업무 외 사적으로는 친구로 친하게 지내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을까. 그는 존재의 평등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니,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옥 문을 여는 사람들도 이미지는 관리한다. 조슈아도 세상 그렇게 영적인 사람이 아닐 수가 없다. 하루는 유진 선생님이 몸이 너무 아파 조퇴하려는데, 조슈아가 말을 걸었다. "유진 갓 러브스 유" 내 평생 그렇게 영혼없는 톤으로 전하는 사랑은 처음 들었다. 조슈아는 아침 성경 묵상 시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유진에게 전해야겠다'고 사람들에게 말해두었기 때문에, 유진이 집에 가기 전 얼른 그 날의 숙제를 마쳐야 했던 것이었다. 따뜻한 말도 영적인 멘트도 사실은 모두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없고, 나와 단 둘만 남은 자리에서는 두꺼운 가면을 벗어던졌다. 수업이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조슈아가 뒤따라 내려오기 시작했다. 조슈아는 키가 180 정도로 큰 편이었다. 철문과 철문 사이, 캄캄한 어둠을 먼저 통과한 내가 먼저 아래층 철문을 열고서는 문이 닫히지 않도록 붙잡아 주었다. 늘 그렇게 하듯이. 그런데, "오~ 서비스가 좋은데~?" 소름이 끼치는 톤. '이건 뭐지?' '고마워'라는 대답이 아니었다. 그리고 톤을 들으면 알지 않은가. 모욕하고 조롱하는 톤이라는 것을.
만나고 나면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 만나고 나면 "무슨 의미였지?" 생각하게 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은밀하게 나를 돌려 까는 사람. '이 사람 좋은 의미로 그랬을거야' 자꾸 변호해 줘야 하는 사람.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사람. 조슈아가 그런 사람이었다.
내 앞에 지옥 문이 열렸다. 나는 세상에 의도적으로 거짓을 말하고 특별한 잘못없이 나를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제까지 알아왔던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계가 모두 무너졌다. 조슈아가 선한 사람이 아니고, 내가 그를 선하고 친절하게만 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이 세상에 의도적으로 남을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자아가 붕괴하는 듯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결국 나는 조슈아를 내 관심에서 끊어냈으며, 부서 일만 사무적으로 지시했다. 그렇다고 단언컨대 그를 필요 이상으로 괴롭힌 적은 없다. 오히려 너무 업무를 과중하게 주는 것은 아닐지, 내 양심의 목소리 때문에 스스로 괴로울까봐 조심 조심 업무를 배분했으니까.
한 번은 부서 회의 중, 그가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내 지시를 무시하려 하다가 자기 뜻대로 안되어서인지, 다른 부서로 이동하겠다고 억지를 썼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업무를 지시했고, 그는 결국 사무실에서 고성을 지르며 분노를 쏟아내었다. 나는 그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고 차분하게 말했다. "조슈아는 내 부서에 꼭 필요한 사람이고, 나는 다른 부서에 못보내니까 남든 말든 알아서 해요!" 그리고는 조슈아를 그 자리에 남기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저 수 많은 직장 내 인간관계 트러블 중 하나로만 여겨졌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조슈아가 지옥 문을 열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실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조슈아는 코딩 교사로 학교에 채용되었는데, 문제는 코딩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선생님들도 하나 둘씩 이 문제를 명확히 보기 시작했다. "코딩 선생님이 코딩을 못한다. 뿐만 아니라 열심히 해보려는 의지도 없다." 그리고서는 다른 선생님들에게 업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피해를 끼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실수가 아닌 고의적으로 말이다. 업무에 실력이 없었고, 자기 자신을 믿을 만한 실력이 없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인정받고 싶어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는 결국 학교 학생들에게 학교 욕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고, 학생들이 자기를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제일로 따르도록 만들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맘껏 놀면서 자기가 대장이 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가 어린 시절부터 체득해 온, 가장 익숙한 삶의 방식이었다. 몇몇 학생들이 조슈아의 모습을 닮아갔다. 친구들을 조롱하고 모욕하였으며, 다른 선생님들과 학교의 정당한 교육 방침을 비방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조슈아는 인턴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갔다. 나는 안다. 그는 내가 자기 때문에 지옥같은 고통을 경험했는지 여부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것을. 자신이 학생들에게 정신적으로 지적으로 얼마나 악영향을 끼쳤는지 여부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지옥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다.
조슈아가 떠나고 얼마 후, 내게 병이 터졌다. 급성 위염이었다. 내 평생 한 달 동안 밥 한 숟가락만 먹어도 소화가 안되고 얹히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스트레스가 심해서였을까. 학교에 가서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학교 일을 그만 두었다.
그 때부터였다. 지옥 문을 여는 사람들을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된 것은. 조슈아 후로도 몇 명을 더 만났다. 조슈아 때처럼 매일 전투를 벌이지는 않지만, 종종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찝찝한 기분이 들게하는 일도 겪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깎아 내리는 말도 들어야 했고, 협박을 받으면서 폭행 당하는 일도 있었다. 비록 그들은 조슈아가 아니었지만, 마치 조슈아가 다른 사람들의 가면을 쓰고서 내 앞에 나타난 것처럼, 그들의 본질은 똑같다.
나는 그들의 눈동자를 그저 차분하게 바라본다.
나는 안다. 그들의 본질은, 두려움이다.
버림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자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너무 슬프다. 두려워하는 그들이. 경계하는 내가.
함께 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그저, 평범한 우리 사이에 숨어 들어 온 그들을
긍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다시 기도할 뿐이다.
그래서 하늘의 문을 열고 지옥의 문을 조용히 닫을 수 있다면.
*요한일서 4:18-19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