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
나는 신민 작가의 팬이다.
아마도 작년 북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신진 조각가 전시회에서 작품을 본 이후로. 매료되었다.
성북어린이미술관 꿈자람에 들어서자마자, 딱 봐도 신민 작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조각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점토로 속을 채우고 겉면은 패스트푸드 감자튀김 봉투로 마감을 친 인물들.
보자마자 여기가 사실은 맥도날드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감자튀김이고, 맥도날드는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해 온 나인데, 보고 싶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노란 아치형 어깨를 무겁게 늘어뜨린채 쓰레기 봉투를 양손 가득 들고 가는 직원의 얼굴, 땅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줍고 닦느라 허리를 펼 수 없는 직원들의 얼굴.
우리가 그들의 화난 얼굴을 볼 수 있는건, 주문받은 새 아이스크림을 건네 주기 위해 허리를 폈을 때 뿐이다. 사실, 그런 적이 많았다. 나는 주문을 하고 음식을 받았을 뿐인데 화가 난 얼굴로 응대하는 직원들을 경험하곤 했다. ’아니 왜 저래? 나한테 왜 그러는거야?’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고 찬찬히 생각하면서 알았다. 쓰레기를 치우고 땅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닦는 그 무게에 눌린 그들의 얼굴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는 것을. 그들 역시 얼굴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화가 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직원들은 손과 발이 닳도록 일을하고 얼굴을 보일 여유조차 없지만, 뒤에 선 손님들은 여유롭게 웃으며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마치 손이 없는 것처럼. 내가 자주 갔던 맥도날드 신촌점, 중랑점, 선릉점… 떨어진 아이스크림들, 바쁘게 움직이는 점원들과 대걸레, 사라진 손님들이 머릿 속에 스쳐 지나간다.
OO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일할 때, 막힌 화장실을 뚫고 치워야 하는 경우가 참 많았다. 화장실을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했기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일도 많았다. 일을 저지른 사람이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하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럴 때마다 치우는 건 교역자들의 몫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 싼 똥을 치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신민 작가는 바로 그런 일이 맥도날드에서는 매일 일어난다고 내게 하소연하는 것만 같다. 왜 우리만 노예처럼 이 일을 오롯이 해야 하는 거냐고, 저 손님들은 손이 없고 발이 없냐고.
요즘 직장인들은 모두 퇴사하는 꿈을 꾼다고 한다. 그런데 직장인의 옷을 벗고 사장님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한들,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모두 함께 무거운 노예복을 벗어던지고 자유와 해방의 환호성을 지르는 꿈. 입고 있는 옷이 아니라, 내 모습 그대로 너의 모습 그대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표정을 살펴주는 세상을 꿈꾸면 좋겠다. 모두 함께 말이다. 그런 곳이라면 내가 좀 더 치우고 내가 좀 더 고생해도 괜찮을텐데. “고맙다, 미안하다” 한 마디면 마음이 시원해질텐데.
돌아보니, 나 또한 마음이 아프다. 부끄럽다. 나는 오늘 누구에게 그저 손님같은 사람 아니었나. 혹시 누구의 얼굴 표정을 살피지 못했나.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