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진, [세상의 발견: 세대들]
"아빠! 기.도.해.주.세.요오" 이제는 잠 자리에 들 시간이라고 불을 끄고 방문을 닫고 나가려고 하면 두 딸 사랑이와 시온이가 꼭 기도해달라고 노래를 부른다. 나는 늘 예상하고 있었지만 처음 듣는 요청인 것처럼 아이들 방에 들어가서는 두 아이들 사이에 함께 눕고는 기도를 해준다. "하나님, 무서운 꿈 안꾸고 아침까지 쭈욱 잘 자게 해주세요." 요 녀석들 기도해달라고 해놓고선 눈 뜨고 큭큭 큭큭 놀면 어떡하냐. 오냐 무엄하지만, 나도 얼른 씻고 자야하니까 기도는 원테이크로 마쳐야 한다. "아멘"
기도를 마치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3학년 윤사랑이 내 팔을 잡아 끈다. "아빠, 근데 나는 예수님이 한 말 중에 '어린이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게 제에일 좋아. 어린이처럼 자기를 낮춰야 된다는 말이잖아." "맞아 사랑아. 그런데 아빠는 이런 생각도 해봤어. 어린이는 놀 때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정말 정말 재밌게 집중하잖아 시간도 빨리 가잖아? 그러면 그 시간이 막 천국처럼 재밌잖아. 그걸 말하는게 아닐까 생각해봤어. 또 그렇게 자기한테 주어진 시간을 감사하게 보내면 천국같지 않아?" 옆에서 듣고 있던 1학년 윤시온이 한 마디 한다. "응 아빠, 그래서 나 저번에 놀다가 잠바 잊어버렸잖아" "야! 너!" "큭큭큭큭" "와하하하하"
나는 천국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서 두 딸과 이야기할 때 일부러 눈을 맞추고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으니까. 천국을 놓칠 때가 많으니까. 그럴 때면 시온이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빠. 지금 내가 묻는 말에 대답 안했어." 퇴근하면 두 팔 벌려 뛰어오는 아이들을 안을 때면 천국을 안고 있는 것 같다. 죽은 후에는 이 기억을 가지고 갈 테니까 아이들의 어깨를 꼬옥 안고 엉덩이를 토닥토닥한다.
한 달 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부모님을 찾아갔다. 요즘은 명절 때가 아니면 부모님 집에 잘 찾아가지도 않는다. "야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 급하면 우리가 빌려줄 테니까. 급한대로 일단 해결하고 봐야지." 내게는 아낌없는 나무가 되어주시는 부모님이라서 선뜻 "응"이라고 말하고 싶지가 않다. 용건을 마치고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아버지가 대뜸 말하신다. "야 애들이라도 좀 자주 보게 해줘라" "응" 대답했는데, 그 이후로 아직까지 사랑이 시온이를 부모님 댁에 데리고 가지 않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 집에 자주가지 않게 된 것은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후부터였다. 부모님들의 건강을 위해서였고,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였고, 다른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였고, 정부의 정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마침 그즈음 나와 우리 가정은 처음으로 서울을 떠났다. 40년간 살던 중랑구를. 지금도 처형네만 빼놓고는 본가 처가 형제 사돈 모두가 중랑구에 살고 있다. 그런데 내가 용인에 있는 대안학교 교사로 출근하게 되면서 경기광주로 이사를 가기로 한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아니 어쩌면 마음에서 멀어져서 눈에서 멀어지기로 한거였나.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가정은 그렇게 멀어졌고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이사 온 지금도 그 횟수는 전혀 늘어나지 않고 있다. 사실 2주에 한 번씩은교회에서 부모님을 잠깐 잠깐 뵙고 있다. 아버지는 언제까지나 꼿꼿하고 멋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등이 굽었고 뵐 때마다 살이 빠지셔서 보기에 안쓰럽다. 그런데 지난주 차를 타고 집에 먼저 가시라고 인사하는데 그 모습을 본 사랑이 시온이가 달려와서는 "아빠, 할아버지네 집에 가면 안돼? 응? 할아버지네 갈래!"라고 졸랐다. "그래? 그러면 너네 먼저 할아버지네 가도 되는데, 교회 아이들이랑 못놀아도 괜찮겠어?" "아니. 그러면 다음에 할아버지네 갈래. 가서 잘래" 아이들은 교회 안으로 다시 총총 사라졌다. "아빠,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사랑이 시온이는 다음에 한 번 재우도록 할게"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사실 아버지를 빼닮았다. 외모, 성격, 지능. 모든 것을 아버지를 닮았다. 그리고 시온이는 그런 날 쏙 빼닮았다. 특히 시온이가 아기 때부터 아버지를 좋아했다. 시키지 않아도 할아버지에게 가서 안기고 품에 앉아 있는 아기였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참 행복해 했다. 비록 과한 리액션은 없었지만 얼굴의 주름조차 웃고 있었다.
요즘 종종 아버지와의 이별에 대해서 혼자 생각한다. 나이가 75세이니 만큼 몸이 서서히 약해지시고 있고 언제 떠나셔도 이상하지 않은데, 나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 아버지는 나에게 세상을 가르쳐주었고 세상을 사는 법을 가르쳐주었으며, 신앙의 유산을 전수해 주었다. 가장 힘든 시간에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무한한 지지와 격려를 받고 어려움을 이겨낸다. 그런데 아직까지 내가 아버지에게 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도.
스케줄러를 가져와서 12월 3일과 12월 17일에 동그라미를 하고 쓴다. '사랑이 시온이 할아버지네 가는 날' 두 날 중에 하루는 보내야지. 아버지에게 천국을 선물해주고 싶다. 아이의 눈으로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보는 놀이 속에서 흐르는 세월의 야속함을 잊고 한 껏 웃으실 수 있도록.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