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물에 대한 감각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평온할 때가 있다.
흔들리는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어스름이 묻은 한강을 보며 수영장의 물을 상상한다. 물 위에 눕고, 물과 물 사이로 들어가고, 물을 잡고, 물을 밀어낸다. 손을 바라본다. 손가락과 손가락사이의 틈으로 물이 빠져나가는 감각을 안다. 물의 무게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물이 편안해진 건 물의 무게를 느끼고 나서부터다. 처음 수영을 시작할 때는 물이 가볍고 내가 무거웠다. 나는 자꾸 가라앉았고, 허우적거리는 손에 닿는 물은 가볍게 빠져나갔다. 어느 순간 물의 무게가 느껴졌다. 손으로 밀어내는 물이 제법 무겁게 잡힐 때쯤, 나는 레슨과 레슨 사이 사람이 없는 레인에서 몸에 힘을 빼고 물 위에 둥둥 떠있곤 했다. 묵직한 물을 베고 누워있는 느낌이었다. 물을 가르는 느낌보다는 물에 속하는 느낌이 좋았다. 몸을 새우처럼 말고 물 중간에 들어갔다. 수영장 바닥에 배가 닿을 정도로 물아래로 가라앉았다. 숨을 아주 천천히 뿜으면 생각보다 길게 있을 수 있었다. 몸 안의 숨을 다 쓸 수도 있다는 아슬아슬함이 숨을 뱉어내는 그 시간을 평온하게 만든다.
가로25m, 세로25m의 갇힌 물 안에서 나는 어디에도 갇혀있지 않은 기분을 느낀다. 물 안에서 모든 빛은 일렁이고 모든 소리는 뭉개져서 들린다. 현실이 너무 선명해서 견딜 수가 없을 때, 가벼운 공기 안에서 어떠한 존재감도 느낄 수 없을 때, 나는 물이 되는 꿈을 꾼다. 모든 것이 흐릿하고 몸을 누르는 물의 무게만 느껴진다. 숨을 오래 오래 참고 싶은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