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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잇 May 31. 2019

영화 <액트 오브 킬링>

누가 '그'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나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조금 헷갈렸다. 이 사람들은 지금 죄인으로서 이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거절할 수 없이 이 시나리오를 받아든 것인가? 그러나 중간 중간 나오는 어떤 인물들의 대사에 고집과 우월감이 엿보이는 것은 왜였을까, 그래서 잠깐 영화를 멈추고 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찾아보았다.


내가 봤던 영화들 가운데 대학살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영화는, 훗날 그들이 저지른 행위가 '죄'로 평가되고, 그들이 패배한 뒤에 만들어진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이미 패배했고 죄를 묻고자 만들어진 영화일 것이라고 속단했나보다.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안와르 콩고는 인도네시아의 '국민 영웅'이었고, 영화를 만들던 당시에도 제작진은 안와르 콩고에게 '업적'을 재현하는 영화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영화 초반, 안와르가 과거 사형을 집행하던 모습을 연기하며 활짝 웃고 있었다. 아주 재미있는 기억을 추억하듯 해맑게 웃는 모습이 정말 기괴했다. 이런 부분들에서 관객은 인간이 얼마나 순수하게 악해질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그 표정이 마냥 해맑아 할 말을 잃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제작진들은 이 인물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연기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는데, 이 시간을 통해서 안와르 콩고가 조금씩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러닝타임은 너무나도 짧지만 실제 이 영화를 찍은 기간이 상당히 길었기 때문이다. 몇 십 년이 지난 이제야 안와르 콩고는 밤잠을 설치며 뒤척이게 된다.


죄 없는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만들어가며 학살한 어떤 가해자는 자신의 살해를 아담과 이브의 시대까지 끌어올린다. 자신의 정당함을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함마저 내보인다. 중국인 거주지에서 돈을 요구하는 과거를 '연기'하는 장면에서 돈을 빼앗기는 '역할'의 중국인은 겁먹은 표정이다. 그들에게 이 이야기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점은 인도네시아에서 여성의 지위다. 나이가 지긋한 정치인들은 젊은 여성에게 '나이가 몇이냐', '키는 얼마냐' 희롱한다. 골프를 치며 옆에 있는 캐디에게 '사타구니에 사마귀가 있지 않냐'며 굳이 카메라 앞에서 의도가 불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현재의 모습이 이 정도, 과거에 소위 '예쁜 여성(이라는 말이 영화상 등장한다)'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했는지를 회상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끔찍하다.


마지막에 안와르 콩고는 자신이 살해를 저지르던 건물의 옥상에 다시 선다. 해맑게 웃던 처음의 모습은 사라지고,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뭔가를 토하고 싶다는 듯이 헛구역질을 시작한다. 카메라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수년간 보고 난 뒤 그제서야 토악질을 한다. 죄책감일지 증오일지 알 수 없다. 이미 늦은 일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혐오의 눈으로 안와르 콩고를 바라본다. 잘못된 행동을 수없이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액트 오브 킬링>을 찍기 전까진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무게를 알지 못했던 안와르 콩고. 그를 '악'으로 만들었던 것은 민주주의일까? 권력일까? 돈일까? 혹은 그자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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