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잇 Aug 06. 2019

영화 <델마와 루이스>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미국에서는 1991년, 한국에서는 1993년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이다. 리들리 스콧은 <블레이드 러너>, <한니발>, <마션> 등 우리가 익히 아는 작품을 감독(연출), 제작했다. 기존 영화에서 줄곧 시각적 요소에 힘을 주었으나 델마와 루이스에서는 스토리를 위해 시각적 연출에는 살짝 힘을 뺀 듯 하다.


주부인 델마와 웨이터로 일하던 루이스는 주말 동안 루이스 친구의 별장에서 휴식을 즐기기로 하고 떠난다. 가는 길에 잠깐 들렀던 술집에서 델마는 어떤 남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어차피 하는 일탈 신나게 춤까지 춰버린다. 취한 듯해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가자던 남자는 갑자기 강간을 시도한다. 델마는 울부짖으며 거부하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는다. 이후 나타난 루이스가 관자놀이에 총을 들이대고서야 남자는 델마에게서 떨어진다. 루이스는 여자가 울며 싫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싫어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남자는 '그냥 계속 강간할 걸'과 같은 말만 지껄인다. 순간 이성을 잃은 루이스는 방아쇠를 당기고 만다.


델마와 루이스가 꿈꿨던 단순한 일탈이 도망이 된 건 한순간이었다. 델마는 자수하며 정당방위였다고 설명하자 하지만 루이스는 반박한다. 술집에서 그 남자가 웃으며 델마와 함께 춤을 춘 걸 본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고.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언뜻 과잉반응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의 몇 장면을 통해 과거 루이스에게도 델마와 같은 아픔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로도 그들의 길은 평탄치 않다. 멕시코로 가기 위해 델마가 보관하고 있던 루이스의 전재산은 제이디라는 잡범에게 모조리 털려버리고, 어떤 경찰(남성)은 운전자가 여성이라서 루이스를 과하게 고압적인 태도로 단속한다. 유조차를 운전하던 어떤 남자는 델마와 루이스를 성희롱한다. 그들이 그 여정에서 만난 남자들이란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다. 그래도 델마와 루이스는 언제나 멈추거나 사과할 기회를 준다. 그러나 아무도 그 기회를 붙잡지 않고 두 사람을 기만한다. 델마와 루이스가 어떻게 했냐고?


마초적인 남편에 의해 억압된 삶을 살던 델마는 전재산을 잃어 낙담한 루이스를 위로한 후 제이디가 알려준 방법으로 편의점을 털어 돈을 마련한다. 두 사람은 이후 경찰관의 총을 빼앗아 트렁크에 경찰을 가둬버리고 성희롱한 남자의 유조차를 총으로 쏴버린다.  델마는 말한다. 한 번도 이렇게 깨어있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이 대사가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범죄를 저지르는 자신이 진짜 자아로 느껴진다고? 그렇지 않다. 그 사회에서 멋대로 규정된 여성성 안에 갇혀있던 자아를 드디어 '델마'로서 자각하고, 자신으로서 해방했다는 뜻이다. 이전에는 남편을 위해 밥을 하고 옷을 준비해주던 델마는, 짧은 여행을 위해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청자켓을 준비하고 머리를 말던 델마의 모습은 사실 시대적, 사회적으로 형성되었을 뿐 원래 성격은 루이스보다 더 씩씩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종국에 델마와 루이스에게는 '범죄자'의 낙인이 찍힐 뿐이다. 도와주려고 하는 형사는 오직 한 사람, 그는 루이스에게 일어났던 일을 아는 듯 하다. 나머지 사람들은 두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듣고자 하는 용의도 없다. 마지막까지도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경찰들에게 쫓기던 델마와 루이스는 막다른 골목에서 두 손을 잡는다. 잡히지 말자고 이야기하며 그들은 눈앞의 낭떠러지로 돌진한다.



각본을 담당했던 캘리 쿠리는 <델마와 루이스>로 1991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1990년은 미국 매체 주인공의 대부분이 남성이던 시대다. 영화는 당시 여성이 영화에서 소비되던 방식을 뒤틀어 보여준다. 당시 여성 캐릭터는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여자친구, 섹스 심볼 등 주변 인물 정도로 등장한다. 특히나 로드 무비나 버디 무비라고 하면 더더욱 두 남자의 이야기가 중심이던 때다. 그러나 두 여성 캐릭터를 주연으로 설정하고, 두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며 오히려 상의를 벗은 제이디(브래드 피트) 즉 남성을 비추고 있다는 점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표현한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더 스퀘어(The squar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