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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잇 Aug 05. 2018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가장 '나' 다울 때 비로소 내가 된다.

몇 년 만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다시 봤다.


예전에 봤을 때는 단순히 재밌다고 생각한 게 다였다면, 이번에는 좀 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꼭 읽어야 한다고 해서 초등학교 때 '노인과 바다'를 봤다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다시 봤을 때의 기분? 그것과 비슷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은 인간의 원―탑 주제이기 때문일까?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도 '사랑'은 아주 중요한 키워드였다.


소피는 황야의 마녀의 저주 때문에 아주 늙은 할머니가 된다. 하울의 성에서 청소부를 하며 성의 식구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 영화 후반부에서 전쟁터로 향하는 하울에게 소피는 가지 말라고 말한다. 하울은 그때 '왜? 나는 충분히 피해왔어, 이젠 지킬 게 생겼어. 너야!'라고 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다.


소피는 그런 하울을 지키기 위해 하울과 캘시퍼의 계약을 깨버린다. 환경에 순종적이던 소피는 마지막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든다.

영화에서 소피는 아주 늙은 할머니의 외양과 본래 소피의 외양을 왔다 갔다 한다. 미루어보았을 때 황야의 마녀의 저주는, 자신의 꿈보다는 장녀로서 아버지의 모자 가게를 이어나가는 소피에게 딱 맞는 저주였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면 풀 수 없는,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야만 풀리는 저주. 그걸 보여주듯 소피는 저주가 걸린 직후에는 정말 꼬부랑 할머니다. 허리가 굽어서 잘 걷지도 못하고, 독감에 걸린 것처럼 걸걸한 목소리를 가진.

모자 가게를 떠나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찾아 걸으며 하울의 성에 들어간 후, 조금 젊어진 소피 할머니는 청소가 거뜬하다. 이사 간 집에서 자기 동네의 전경을 볼 때, 아마 자신에게조차 숨길 틈 없이 떨렸을 때 소피는 소피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잘 때 소피가 다시 젊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했다. 잘 때는 숨길 게 없다.


그러나 자신의 진심을 숨길 때는 어김없이 노인의 모습이 된다. 하울을 위해 간 황궁에서는 황야의 마녀조차 궁금해한다. 왜 저렇게 멀쩡해? 아마 어떻게 풀리는지는 본인도 몰랐나 보다. 결국엔 누가 마법을 풀어주지 않아도 스스로의 힘으로, 소피는 별빛으로 물든 머리칼을 지닌 소피가 된다!

크게 '나답게 살라'는 메시지와 '대의를 위한 전쟁의 무의미함'을 주제로 보았으나, '나답게 살라'는 메시지가 더 크게 와 닿아, 그 내용 위주로 글을 쓰게 됐다.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해 아쉬운 점은 이렇다. 사실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다. 영화는 완벽했고, 나에게도, 다른 누군가에게도 사랑은 정말 중요하다.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사랑을 빼놓고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사랑만이 어떤 사람에게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 준다. 소피도 그렇다. 하울에 의해 완전히 '소피다움'을 찾게 된다. 그래도 소피에게 자신의 결정과, 생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이 오직 하울이라는 것은.. 납득이 가기도 하고, 왠지 아쉽기도 하고.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고.

글을 마치며, 아이인데도 시종일관 어른스럽던 마르크르에게 머리를 쓰담쓰담해주고 싶다. 아이는 아이다워도 돼, 마르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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