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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잇 Aug 05. 2018

영화 <컨택트>

과거, 현재, 미래와 함께 온 어떤 방문객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시집, 광휘의 속삭임 中, 문학과지성사, 2008


한 사람이 오는 것은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거랬다. 우리나라에서는 컨택트로 개봉했지만 원제는 <Arrival>이다. 그들은 정말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와 함께 왔다.


어느 날 갑자기 12개의, 쉘(주선)이 미국을 포함한 세계 전역에 나타난다. 웨버 대령은 쉘을 타고 나타난 헵타포드(외계인)가 갑자기 왜 나타났는지, 언어학자 루이스와 과학자 이안을 불러 그들의 의중을 묻고자 한다.

처음에는 일정한 시간마다 셸 안으로 들어가서 헵타포드와 접촉한다. 각 나라는 다양한 방법으로 헵타포드에 접근하는데, 특히 루이스는 언어를 직접적으로 교환하기 위해 노력한다. 루이스와 이안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점 긴밀한 사이가 되고, 헵타포드의 언어를 익힌 루이스는 어느 순간부터 현재, 미래, 과거를 함께 경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눈여겨보았던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였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서 사람이 과거, 현재, 미래와 함께 온다고 한 것처럼,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운 루이스에게는, 모든 일생이 선택의 순간 함께 온다고 느꼈다. 쉽게 말하자면 루이스에게 운명적인 일생은 주어져있지만 그것을 알기에 운명을 비틀만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 새로운 인생의 그래프가 그려지고 그에 따른 변화, 즉 현재와 미래―과거는 변할 수 없으므로―를 일시에 경험한다는 설정이 짜릿하다는 생각이었다.


"If you could see your whole life from start to finish, would you change things?"


그런데 내가 생각한 짜릿함은 대부분 사람들과 차이가 있었다.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확인해보니 '미래는 결국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있는 그대로, 매 순간을 행복하게 받아 들겠다는 루이스에 의한 감동이 컸다'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두 번째 포인트는 언어다.
영화에서 헵타포드의 모습이 정확하게 나온 적은 없다. 스토리의 참신성과는 동떨어지게도, 흐릿하게 보이는 헵타포드의 모습은 기성의 가장 보편적인 외계인과 흡사하다. 이는 헵타포드의 '실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완전한 외계의 것이 주는 충격을 기성의 영화와는 다르게 풀어보겠다는 감독의 의지로 느껴졌다.

소통이 어려운 상황에서 외계인이 '무기'로 해석되는 말을 언급했다는 중국은 이들을 공격한다. 또 부정적인 뉴스에 의지해 폭탄을 설치한 군인도 있다. 이처럼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을 나타내는 모습도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끝까지 소통하려고 하고,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루이스를 더욱 부각한다. 소위 외계의 침략을 다룬 기성 영화에는 이러한 소통이 없다. 특히 언어를 형상화해서 보여준 영화는 처음인 것 같다.


 전공이 외국어라서일까, 원으로 형상화한 언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루이스와 이안이 헵타포드와 접촉을 시도한 초반에는 헵타포드는 원을 하나씩 던져준다. 한 문장이 될 수도 있고 한 문단이 될 수도 있는 원은 그 모양만으로 많은 것을 전달한다. 결정적인 장면은 폭탄이 터지기 전 헵타포드가 쏟아낸 말들이다. 수많은 원을 던지고 이안과 루이스를 밀어내 폭발로부터 지켜주는데, 일각에 쏟아낸 말들은 인간이 평생 해석해도 부족할 만큼 많은 말이었다.



영화를 보다가 왼손으로는 YES 오른손으로는 NO를 써보았다. 그마저도 잘 안 되던 인간으로서 이러한 연출에 꽤 박수를 보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쏟아낸 문자를 촬영한 영상본으로 이안은 과학적은 수단을 동원해 다양한 풀이를 시도하지만 정확한 해법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언어를 체득한 루이스만이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시간은 한 방향이다.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헵타포드는 일생을 일각에 경험한다. 이러한 느낌을 살려내고자 원형의 언어를 연출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글은 일시에 생성된다. 반면에 인간은 오른쪽으로든 아래쪽으로든 한 방향으로, 순서대로, 그렇게 글을 쓴다.


헵타포드는 말했다, 무기를 주러 왔다고. 그리고 그 무기는 그들의 말이었다. 그 말을 앎으로써 미래를 아는 것뿐만이 아니라 시간을 열어준다고 했다. 결정된 줄로만 알았던 내 인생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비틀 수 있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무기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내내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미래를 안 다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할까. 과거를 기억하는 인간에게 망각이란 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면 미래를 기억하는 인간에게는 또 어떤 축복이 필요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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