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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놈들! 죽일 거다°!

3-3. 어느 날 방송국을 나오면서

by 얼굴씨
방송국 놈들!


아 열받네


미투 캠페인이 한바탕 연예계를 휩쓸고 갈 때, 나는 쾌재를 불렀다.


내, 너 그럴 줄 알았다.


나중에는 미투의 의미가 변질되어 폭로전으로 변하고, 고소가 오가고 몇몇은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했지만 대개는 터질 만한 일이 결국 폭발한 것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일했던 방송국은 정글이었다.

약한 자는 포악한 포식자에게 가차 없이 잡아 먹히고, 그나마 운 좋게 도망쳐도 벼랑 끝에 구차하게 매달렸다가 천천히 사라져 가는, 그런 가혹하기 짝이 없는 생태계. 운 좋게 혹은 실력으로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서사는 나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화려한 불꽃에 커다랗고 먹음직스럽게 구워지지만 혀에 닿는 순간 스르륵, 한없이 쪼그라는 드는 마시멜로 같은 인생이다.


연예인도 그렇지만 몇몇 '방송국 놈'들도 나를 분개하게 만들었다.


물론 대개는 젠틀하고 훌륭한 인성의 소유자였다고 베이스를 깔겠다.


A 피디는 종종 볼때기를 불룩하게 만들고 다녔는데, 원고 컨펌 좀 해 달라는 말에


여기 뽀뽀 한 번 해라. 그러면 해 줄게.


도른자여. 될 말인가.


시대가 조금은 변하여 감개무량하다.

라떼는, 학교에서 귀싸대기를 맞는 건 기본이고, '피바다'라고 불리는 선생이 각 학교에 한 명씩은 보급이 돼 있었다. 죽도록 맞을 때마다 다음엔 내가 더 열심히 잘해야지 반성을 했던 모범생 라떼의 시절.

교수들은 함께 술을 먹다가 '너와 함께 이 밤을 보내주리!' 지껄이고, 학생은 또 '꺌꺌꺌 너무 좋아요 교수님!' 팔짱을 끼던 너도나도 정신머리 없던 시절.

나도 누군가에게, 권위에 기대어 말도 안 되는 윽박을 질렀을 수 있고, 술자리에서 이성에게 택도 없는 농담을 날렸을 수도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들며 살았던 야만의 시대에, 선생도 교수도 나도 또 누구도 그렇게 보고 들으며 자랐기에 극악무도한 마음은 아니었으리라 스스로 부끄럽게 반추해 본다.


침대 두 개가 있는 리조트에서 면접을 보자


얼굴 좀 가까이 대 봐. 음 못 생겼어. 쟤 봐봐, 이쁘잖아. 뽀뽀하고 싶게.


술자리에 올 거지? 술 한잔 따라야지


너, 그냥 확 잘라버린다!


이런 일상적이면서도 지극히 폭력적인 말들은 내가 살았던 야만의 시대, 그 연장선으로 봐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소문은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둔 xxxx국 부스를 넘나들며 이리저리 퍼져갔다.


저 피디가 xxx를 괴롭혔다더라.


잘 나오다가 요새 안 보이잖아. 제대로 찍혔다던데.


니들 저 피디 조심해. 전적이 화려하다?


내가 들은 소문들은 바로 쇠고랑을 차고도 몇 대 더 후려쳐 맞을 일들이었는데, 회식 자리에서 그런 떠도는 말들의 진위를 논할라치면,


쉿, 팩트만 말해. 아니 그것도 말하지 마. 그냥 입 닫아.


사방에서 경고등이 날아와 그냥 조용히 삭이던 날들이 많았다.




B 피디는 휴일 주말 아침에 꼭 전화를 했는데,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면,


어디야? 누구랑 있어? 에이, 남자랑 있네. 좋아? 원고는 다 썼니?


하며 급하지도 않고 심지어 때도 안 된 원고를 재촉했다.

주말에 운동이라도 하고 있으면,


에이, 운동하는 소리가 아닌데? 어디 있어, 남자랑 있는 거 같은데?


이건 라떼고 뭐고 그냥 쇠창살감 아닌가.

처음 한 두 번은 상황 파악 못하고 그저 웃어넘겼는데, 어느 순간 소름이 끼쳐서 선배 작가에게도 토로하고 담당 피디에게도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미친놈


그들의 반응은 거기서 끝이었다. 그랬구나. 알겠는데, 음, 어쩌라고? 그게 다였다.

라디오 작가는 피디의 말 한마디에 직장을 잃는다. (유명•유능한 작가들은 물론 예외겠지만)

영화 작업도 그랬지만, 방송국에 왔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바로 옆에서 실수 하나로 잘려나가는 작가들을 보았다.


작가의 생존권을 쥐고 있는 피디는 정글의 최강 포식자 대왕왕왕왕사자님이셨다.




가끔 친구들이 직장 내 괴롬힘에 대해 얘기해 준다.


설마 그런 일이, 뻥치지 마.

사람 사는 데 맞아?

그런 사람은 왜 안 잘라?

그런 사람을 회사에선 왜 가만둬?


대부분 상상하지도 못할, 비상식적인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일보다는 사람, 때문에 직장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한다는 기사의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생각해 보면, 시나리오든 라디오 원고든, 글 쓰는 게 힘들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잠들지 못하는 시간은 있었지만, 그것이 결국 글로 나올 때는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으므로 나는 글 쓰는 것이 너무 좋았다. 형편없는 소설로 교수님께 망신을 당하거나, 원하는 만큼 글이 되지 않아서 클라이언트에게 원고를 수없이 까인 적도 있지만 그건 당연히 내가 책임져야 할 몫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노오오오력을 하면 되는 거였다.

돌이켜보니, 작가로서 힘들었다기보다는 누구나 겪는 사회생활 때문에, 사람 때문에 실패하고 힘들었던 것 같다. 일반적인 회사든 조금 특이한 방송국이든 결국 사람, 이 문제다.




내가 겪었던 이 사건(?)도 마찬가지로 사람, 문제였을 것이다.

그도 한때는 라디오스타였던 연예인이었는데, 어느 날 사생활 기사가 터져 나오면서 자연스레 자취를 감춘 사람이다. 지나고 보니, 신기하게도 일 할 때 트러블을 일으켰던 자들은 현재 티브이에서 그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역시 무섭다, 인생.


프로그램이 개편되고, 팀도 바뀌고 하여 제작진과 출연자 등이 함께 회식을 하는 자리였다. 그는, 그날 우리 회식 자리에 누구의 지인으로 동석했는데, 술을 한 잔 마시고 왔던가, 아니면 와서 마셨던가 기억이 정확하진 않다. 어느 정도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무렵, 그는 돌변했다.

갑자기 웨이터들을 불러 일렬로 세워 놓고 뺨을 때리고, 옷을 다 벗으라는 둥, 여기서 기어보라는 둥, 춤을 추라는 둥, 살면서 처음 만나보는 종족이었다. 나는 왜 인간인가, 를 고민하게 하는 그런 비인간적 부류들 말이다. 나를 비롯한 여성 작가들에게도 필터 없는 말들을 마구 쏟아냈는데 차마 글로 적기엔 수준이 너무 낮아서 패스하려 한다. 더 있다가는 그한테 전염병처럼 옮을 것 같아서 어린 작가들을 먼저 보낸 후,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을 부여잡고 가방을 챙겼다. 이젠 집에 가야겠다고 하자, 피디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자기랑 집이 같은 방향이니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이미 술에 거나하게 취해 눈이 풀린 피디와 한 시간을 동승할 수는 없었다. 나는 선배 작가에게 사정을 말했고, 자기가 잘 알아서 택시를 잡아주겠다며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주었다. 살았구나, 하며 택시를 타려는데,


빨리 오세요! 얼른 타세요, 피디님!


하며 그 눈 풀린 피디를 결국 나와 같은 택시에 밀어 넣는 것이었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그 말을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가는 내내 손을 잡히고 그걸 다시 빼고, 어디를 들렀다 가자는 둥, 뭐를 하자는 둥, 지옥 같은 한 시간을 보내고 나는 영혼이 탈탈 털린 채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 날 방송국에서 본 그 연예인은, 정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해맑게 인사를 했다. 아 필름이 끊겼구나, 그래 사람이 그럴 수는 없어, 했는데 돌아서는 나를 향해,


맞아. 내가 잘 봤어, 아주 묘하게 생겼다니까.


찡긋까지 날리며 가는 그 모습에 나는 그냥 할 말을 잃었던 것 같다.

몇 번의 개편을 맞고, 나는 내 발로 방송국을 나왔다. 도저히 더는 감당할 멘탈이 남아있지 않았다. 몇몇의 젊고 젠틀한 피디가 함께 일을 하자고 했을 때, 나는 왜 의리를 외치며 기존팀을 고수했었을까. 그냥 나도 다른 작가들처럼 내게 더 맞는, 나를 찾아주는 그런 피디의 프로그램으로 갔을 걸.


다시 강조하지만, 젠틀하고 쿨한 연예인과

방송국'분'들이 더 많았다.


한 피디와는, 어떤 프로그램이든지 함께 일을 하고 싶어서 아는 피디에게 말 좀 전해 달라고 사정을 하기도 했었다.

어느 진행자나 출연자는 얼굴을 가까이 영접하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으로 기록해 둘 만큼 몹시 좋았다.

라디오국 일 자체도, 따분한 걸 싫어하고 사람 좋아하는 ENFP 내 성향과 잘 맞고, 음악과 더불어 일 할 수 있다는 것도 영광이었다. 그래서 가장 미련이 많이 남는 일이기도 하다.

그 미련!

선배의 조언만 아니었다면, 그 미련의 끝을 잡고 벼랑에서 떨어지기 직전까지 매달려는 보았을 텐데.

이작가야, xxx 드라마 작가 알지? 내가 얘기해 놨어. 글 잘 쓰는 친구 하나 갈 거라고. 너 거기 가서 드라마 써. 이런 x 같은 데 있지 말고, 큰 물로 가.


귀를 없앴어야 했나. 왜 나는 또 팔랑거렸을까.

그렇게 나는 드라마라는 미지의 장르로 토스되었다.




다음 편 이어집니다.


-연예인 및 방송관계자 에피소드는 매우 개인적인 의견일 수 있습니다. 특정인을 저격하지 않습니다!-


주석

°존박표 예능돌직구 "방송국 놈들, 죽일 거다" - 스포츠경향 | 뉴스배달부 (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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