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으로부터 사람 13.
밀크커피의 따뜻한 색감을 지닌 왕사마귀 카카.
수컷은 암컷에 비해 몸집이 훨씬 작고 심지어 짝짓기가 끝나면 잡아 먹히기도 해서, 상대적으로 풀숲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때문에, 수컷 사마귀를 잡아 신이 난 아들 녀석은 색감답게 카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고, 반드시 성충까지 키워서 짝짓기를 시킬 것이라고 비장한 눈빛으로 다짐을 했다.
카카는 다른 수컷들보다도 좀 더 작은 몸집이었지만 더 날쌔고 먹이를 먹는 속도도 엄청 빨랐다. 이 녀석은 사람으로 치면 EEEE 성향의 사마귀였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직 날개도 없는 것이 날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아들의 팔에 올랐다가 머리에 올랐다가 목 뒤로 숨었다가, 낯선 이가 와도 겁 없이 다가가고, 마치 작은 아기강아지처럼 그저 귀여웠다.
그랬던 카카가 4일을 먹지 않고 벽에만 매달려 있었다.
사마귀는 탈피를 하기 전에 이렇게 먹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앞서 키웠던 다른 녀석들의 단식이 이틀을 넘지는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몹시 불안해졌다. 이러다가 굶어 죽는 건 아닌지, 말이 통하면 좀 물어보고 싶었다.
우리는 가끔 물을 보충해 주며 매달릴 곳을 마련해 주고, 거슬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근처에 가 조용히 살피기만 할 뿐이었다. 단식 7일째에 더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각종 먹이와 함께 카카를 케이지에 넣었고, 매달릴 루바망은 사냥에 거슬릴까 봐 넣어 주지도 않았다. 눈앞에 다양한 먹이를 흔들어 주어도 뒷걸음질 치며 도망갈 뿐이어서 이렇게 가두어 두면 뭐라도 하나는 먹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하필 응급으로 케이지에 넣은 그 밤에, 카카는 천장에 매달려 그대로 탈피를 해 버렸다. 고작 5시간 정도 혼자 두었을 뿐인데,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인간의 밤에 사마귀는 최고난도의 성충 탈피를 해 버렸다. 사마귀 박사라고 자신만만해하던 아들은 분명 이번이 성충 그 이전, 종령이 되는 6번째 탈피일 거라고 했지만 사실 1령을 더 지낸 카카는 날개가 펴지는 성충 직전의 종령 사마귀였던 것이다.
성충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인 종령 탈피는 사마귀의 충생에서 단연코 중요한 과정이다.
공중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보니, 껍질에서 마지막으로 앞다리를 빼낼 때 힘 조절이 어려웠을 것이다. 먹이를 잡을 때 쓰는, 생명과도 직결된 앞다리가 기형이 돼 버렸다. 꺾이기도 했고, 상처가 난 것도 같았다. 더이상 카카는 제대로 된 사냥을 할 수가 없었다. 덩치가 큰 먹잇감 앞에서는 도망가기 일쑤였고, 작은 먹잇감도 하나 남은 앞다리만으로는 잡기 힘들어했다. 사마귀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처럼 동공을 마주하게 되는데, 카카의 눈에서 나는 깊은 허무를 보았다.
아니, 아줌마, 제가요, 이게 아니었거든요? 뭔가 이상해요, 내 몸이. 이게 왜 안 잡히는 거예요? 왜요?
카카는 그렇게 느닷없고 난데없이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되었다. 언제든 누구나 장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문득 사는 것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생각게 한다. 지금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식의 겸손은 혹여나 건방진 것이 아닐까 하는 쓸쓸한 기분도 더하여.
이 딱한 사마귀를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 사육자의 무지로 이렇게 되었으니 책임을 져야 했다. 카카가 공포를 느끼지 않을 만한 작은 개미나 나방 따위를 눈앞에 흔들어 주면서, 조금이라도 먹을 때까지 핀셋으로 잡고 도와줘야 했다. 하지만 턱에도 문제가 생겼는지 한 마리의 먹이를 다 먹을 때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렇게 먹고 쉬기를 반복하면서, 끝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카카는 조금씩 장애 사마귀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다. 먹이를 한 다리로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수십 마리의 개미와 메뚜기를 핀셋으로 집어 주고, 그러다 떨어지고 다시 줍고 씹다가 말고 도망가고 다시 끌어와서 먹이고 떨어지고 잡다가 흘리고, 너와 내가 뒤섞인 그 훈련에서 나는 종종 현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
카카의 날개라도 멋졌더라면 나는 분명히 방생을 택했을 것이다. 성충이 되면 날개가 쫙 펴지며, 수컷들은 거의 잠자리처럼 제법 날기도 하는데, 그래서 수컷 사마귀가 진짜 멋진 건데.
카카는 날개에도 심각한 장애가 생겼다.
성충 탈피에서는 날개를 말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막 돋아난 날개를 중력의 방향과 바람의 힘으로 차분하게 몸에 달라붙게 만든 후 언제든 그것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끔 잘 말려야 한다.
카카는 거꾸로 매달려 있던 몸통에서 날개가 저만치 동떨어져, 그대로 굳어버렸다. 수분의 문제도 있었으리라. 적당한 수분이 있어야 밸런스를 맞추며 날개가 천천히 마르는데 아마도 덥디더운 날씨에 에어컨 제습 기능을 최대로 가동하다 보니 적절한 수분 공급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카카는 펴지도 접지도 못하는 요란한 모양의 날개를 갖게 되었는데, 마치 플라스틱 책받침으로 머리카락을 비비면 정전기 때문에 후다닥 솟구쳐 버리는 삐죽삐죽한 꼴이었다. 게다가 몸의 반을 차지하는 난리법석 날개에 긴 다리가 자꾸 걸려 넘어지고, 그 재빨랐던 움직임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버렸다.
팔랑거리며 잘도 돌아다니던 극외향적인 카카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 곳에서 매달려 공기처럼 조용했다. 의기소침했고, 얌전했다. 장애를 갖게 된 그 이후부터인지, 아니면 의젓한 성충이 되어서인지는 모르겠다.
또각또각 높은 구두를 신은 어린아이처럼 비틀대며 걷는 카카는 그래도 나를 보면 느릿느릿 다가왔다. 잘못된 앞다리는 아랫부분에서 시작해 위로 점점 썩어갔다. 시간과 함께 마디마다 잘려 나가고 그나마 남은 부분은 검게 변했는데, 그 짧아진 다리를 흔들면서 나에게 걸어왔다. 진심이란 서로의 종種을 가리지 않고 전달되는 것일까. 내가 이렇게 알뜰히 돌본 반려동물이 있었나 싶게, 카카는 나와 무척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조금씩 기운을 차려 가는 듯 보였다.
어느덧 제법 한 다리로! 스스로! 어설프지만 사냥을 해서!
그렇게 먹이를 잡고 먹을 줄 아는 기특한 카카.
나는 종종 갈등에 빠지게 되었다. 이 녀석을 바라보노라면 너무 기특하고 예뻐서 막 쓰다듬어 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여전히 너무 겁이 나고, 내 생애 최초로 사마귀를 맨손으로 만졌을 때, 그 느낌이 너무 싫어서 다시는 시도조차 못할까봐 두려웠다. 더듬이 한쪽을 슬쩍 만지다가 너무 빠른 움직임에 기겁을 하고 뒤로 자빠지도 했다. 여전히 나는 고민한다.
사마귀들, 만져 말어, 사랑해 줘 말어, 쓰다듬고 머리에 올려 말어, 진짜 이쁘다고 말해 말어!
죽을 줄만 알았던 반려사마귀 카카는, 50센티 정도는 기어갈 수 있고, 벽에도 느리지만 올라갈 수 있고, 덩치 큰 메뚜기도 몇 시간에 걸쳐 먹다가 쉬다가, 그렇게 끼니도 해결할 줄 알고, 내가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면 입을 대고 쪽쪽 빨아먹기도 하는 그런 누구보다도 멋진 성충 사마귀의 서사를 갖게 되었다.
카카에겐 또 다른 사마귀 친구가 있다. 어느덧 짝짓기 시기가 되어 반드시 카카를 닮은 새끼를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갖고, 아들이 채집해 온 웅장한 성충 암컷 사마귀 코코다. 자연에서 성충이 되기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인데, 알집에서 부화한 이백마리의 사마귀 중 1-2%만이 성충으로 자란다.
코코는 엄청난 덩치에 걸맞게 메뚜기를 한 번에 두 마리씩 먹어 치웠다. 코코의 눈치를 보며 뒤꽁무니를 슬슬 따라가는 카카, 저건 뭐 하는 놈이야, 하고 바라보는 코코. 둘을 한 사진에 담으니 조금 짠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그랬는데, 마침 남편이 말했다.
어, 우리 사이 같은데? 큭큭큭.
누가 그러던데. 요즘은 철저한 모계 사회라고. 나보다 덩치는 훨씬 크지만 항상 뭔가 쫄려(?)있는 듯한 남편에게 좀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큭큭큭.
다음 편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