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으로부터 사람 12.
먹는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아들은 여전히 대빵이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마치 실연당한 청년처럼 어느 날엔 지드래곤의 ‘무제’를 무한 반복하며 듣고는 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제발 단 한 번이라도
너를 볼 수 있다면
내 모든 걸 다 잃어도 괜찮아
꿈에서라도 너를 만나
다시 사랑하기를
우리 이대로
어우, 눈이 좀 아프네?
벌건 눈을 하고 난 전혀 울지 않았다며, 건들건들 자기 방으로 들어간 후, 한참 뒤에야 얼굴을 문지르며 나오곤 했다.
무제라니.
지드래곤이라니.
나중에 여친이라도 생기면, 난 저 소년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대빵이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이웃과 친구들이 마음을 보태주었다.
강원도 다녀오는데, 아니 이게 차에 타 있더라고. **이 생각나서 가져왔어.
옆 동에 사는 친한 언니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도너츠를 담아 주는 얇은 비닐봉지 안에 튼실한 강원도산 메뚜기를 넣어 건네주었다.
진짜 신기한 게, 오늘 아침에 얘가 내 사무실 책상에 딱 올라와 있었어요. 20년 넘게 일하면서 정말 처음 보는 일이라니까.
친구의 남편은 우리 동네에서는 보기 힘든 좀사마귀를, 퇴근하면서 우리집에 들러 가져다주었다.
언니, 이런 거 나는 뭔지는 모르겠는데, **이한테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
아들의 친구 엄마는 괴물처럼 생긴 돼지여치를 경비실에 맡기려다가 이런 건 맡아줄 수 없다며 거절을 당하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나를 만나 직접 전해 주었다.
그것들은 대개 불투명한 봉지 안에서 파닥거리며 난리법석을 부렸고, 혹은 훤히 들여다보이는 페트병 안에서 입구를 향해 하염없이 뛰기를 반복했다. 손에 받아들었을 때의 그 야생적인 느낌이란......
고마웠지만, 선뜻 받아들기가 약간은 무서웠다는 얘기다!
물론 진심을 담아 전해 주는 손길은 그저 따뜻하고 고맙기만 했다. 그렇게 각양각색의 곤충 위로를 받은 후, 나는 또 한 번 박애주의와 휴머니즘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 역시 인간은 인간이야. 따뜻해. 인간이라서 또 감사하고, 다행이군.
우리집에 있는 여러 개의 채집통엔 위로의 선물로 받은 녀석들과 그 녀석들의 먹잇감이 될 또 다른 각양각색의 녀석들, 그리고 더운 계절이 선사해 준 다채로운 채집 곤충들이 자리를 잡았다. 아, 소식을 어떻게 듣고 오셨는지, 뚫리지도 않은 어딘가의, 미지의 방충망 2-5번 출입구로 마법처럼 찾아온 기타 등등의 곤충 손님들도 여럿 있었다.
반려 곤충 맛집에 오게 된 걸 환영...... 해, 말어?
나는 물 공급과 청결 관리를 맡았는데, 그 옛날 나의 할머니가 수십 마리의 새를 키우며 그 수만큼의 새장을 돌보듯 물심양면으로 그것들을 사육하게 되었다. 다 좋은데, 그래 자식이 좋다는데, 장사있나, 다 좋은데, 모두가 잠든 밤에, 그 방에서 울려대는 탈출을 갈망하는 수감자들의 고통스러운 몸부림은 정말 듣기 힘들 지경이었다. 아들은 곤충들이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거라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것은 분명 처절한 사투였다!
특히나 귀뚜라미는 제 몸 색깔의 액체가 바닥에 묻어날 때까지 자해하는 건지, 본능에 충실해서 그냥 뛰는 건지 난리가 났는데, 툭툭투투투툭투구투투투투투툭투구툭, 밤새도록 그 소리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얘들아, 감히 쉰들러 아저씨에 비하겠냐만, 어쨌든 안 되겠다. 이건 아니다. 나도 너희도, 우리 같이 살자.
밤새 전원 탈출을 시키려다가 아들의 눈물받이가 될 자신은 없어 협박에 가까운 합의에 이르렀다. 대빵이를 꼭 빼닮은 투빵이와 주변에서 잘 볼 수 없는 좀사마귀 올리브만을 남기고 친구들에게 분양도 해 주고 나머지는 방생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먹잇감으로 잡아 온 곤충들도, 그날을 넘기지 않는 조건으로 짧은 시간만 집에 들이기로 했다. 기타 등등의 곤충들에 대한 사랑은 집에 있는 곤충 도감과 놀이터의 나들이로 대체하는 걸로.
며칠이 지나도 아들은 시시때때로 슬퍼하고, 소파에 엎드려 지드레곤의 ‘무제’를 들으며 눈물을 쏟았고, 그 자세로 한 손을 들어 검지를 펴고는 ‘무제’의 한 번 더 재생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빵이의 부재를 채울 것은 ‘무제’뿐이었는데, 사랑을 쏟을 사마귀가 집에 한 마리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나운 습성의 좀사마귀 올리브는 이틀간의 단식 후 환풍기를 통해서 나갔는지 비밀의 방충망 2-5번으로 나갔는지, 아무튼 가출해 버렸고 대빵이와 같은 자매임이 확실한, 너무 비슷한 모양새의 투빵이는 배에 치명상을 입고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들은 투빵이를 거실 바닥에 자유롭게 풀어 두고 애지중지 놀아주었는데, 그만 폼롤러가 그 위로 쓰러지면서 예쁘디예쁜 고추냉이 색의 체액을 쏟고 말았다. 분명 죽음의 색이 짙었지만 투빵이는 열심히 먹이를 먹고, 행운목에 올라가고 우리가 부르면 그쪽으로 얼굴을 둘려주기도 했다. 내장인지 체액인지 모를 그것이 자꾸만 흘러나왔는데도, 이 녀석은 좀 느릴 뿐 여전히 잘 살아 있었다. 내가 사마귀의 목숨에 두 번째로 기도를 하게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틀을 넘기며 눈에 띄게 행동이 느려졌고 먹이를 찾지도 않는 모습에, 말도 안 되게 곤충 병원을 검색하다가 더 이상은 아들에게 상처를 줄 수가 없어서 거짓말이 아닌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이야기했다.
자연 치유라는 게 있어. 사람도 몸이 많이 안 좋으면 깊은 산으로 들어가서 쉬거든?
우리는 다 자연에서 오고 자연으로 돌아가니까.
그러니까 왔던 그대로 풀숲에 놔주면 분명히 건강해져서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비가 부슬거리는 밤에 우리는 채집했던 그곳의 커다란 풀잎에 투빵이를 얹어주었다. 앙상한 다리로 풀잎을 꼭 붙잡고 있는 투빵이는 또 나를 한없이 겸허하게 만들었다. 이후로 아들은 가끔씩 물어보곤 했다.
엄마, 투빵이는 지금쯤 짝짓기도 하고 잘 지내고 있겠지?
그럼, 당연하지. 봤잖아. 우리가 놔준 그 잎에 투빵이가 없는 거. 자연으로 돌아간 거야. 어디론가 갔다는 얘기잖아.
다음 날 풀잎 아래, 개미 떼에 뒤덮인 투빵이를 보았을 때, 나는 얼른 큰 나뭇잎을 들어 저만치 더 더 깊은 풀숲으로 투빵이를 밀어넣었다. 그렇게 흙이 되고, 개미들의 배를 채워주고, 빗물에 흘러가고, 그렇게 우리는 또 어떤 형태로든 만나겠지. 그게 자연이겠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겠지. 아들의 머릿속에 성충이 되어 훨훨 날고 있는 몇 마리의 사마귀들은 또 그런 기억으로 언제든 만나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