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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굴씨 Aug 23. 2023

친구가 되어 줘서 고마워

곤충으로부터 사람 11.



엄마, 대빵이가 죽고 있을 때 나는 물놀이하면서 너무 신났잖아. 나는 그게 제일 미안해. 나를 엄청 불렀을 것 같아. 내가 힘이 세서 개미들 정도는 다 해치울 수 있으니까, 그걸 대빵이도 알고 있거든. 그래서 나를 엄청 부르면서 기다렸을 거야. 그걸 내가 들어주지 못해서 나는 너무 속상하고 슬퍼.


아들은 주르륵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작은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엄마, 여기가 너무 아파. 마음이 아파서 숨을 못 쉬겠어.


어디서 본 적도, 가르친 적도 없는데, 아들은 연거푸 가슴을 쳐댔다. 마음이 너무 아파,라는 말은 정말 마음이 담긴 심장이 막 조여 오고 찌릿하고 미친 듯이 뛸 때라는 것을 아들은 정말 알았을까?


엄마 잘못이야. 네 말대로 대빵이를 바닷가에 데리고 갔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정말 미안해.


한참 대빵이를 쓰다듬던 아들은 좀 진정이 됐는지 차분히 말했다.


아니야 엄마, 사실 아무도 잘못한 게 없어. 개미들도, 먹이가 있으니까 먹었겠지. 대빵이도 동족포식도 했는 걸. 얼마나 살아있는 곤충을 많이 먹어 치웠는데... 그런 거잖아. 곤충들의 세계는. 아무도 잘못한 건 없는 거 같아.


아들은 파브르도 콩쥐도 아닌 철학자가 되려나 보다.




집 앞에 대빵이를 묻어 주었다

아들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웃다가 울다가 또 통곡을 하다가 잠시 잠이 들었다가 또 울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집에 돌아와 아빠의 손을 잡고, 처음 만났던 그곳에 대빵이를 묻어 주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아들을 아주 참 많이 울었다. 밥을 먹다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잠을 자려 누웠다가, 학교엘 가다가, 산책을 하다가, 모든 곳 모든 시간에, 내 얼굴을 피해 혼자서만 슬퍼했다.

그러다가도 막상 누군가를 만나면 아무렇지 않은 듯


죽었어요! 뭐 그냥 잡아 먹혔어요.


하면서 발랄한 척 웃기도 했다.


울어도 돼. 슬프면 슬프다고 말해도 돼. 그냥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꺼내도 돼.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말하면 자꾸 더 보고 싶으니까 그렇지! 엉엉엉.

난 사실 안 죽었다고 생각하는 중이거든! 엉엉엉.


아이들이 보내는 심리적 싸인은 어른의 것과 달라서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놀랍다.





웃음기가 사라져 멍한 얼굴을 볼 때마다 이런 것이 펫로스 증후군인가 싶어서 한동안은 상담이라도 받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울고 있거나 슬퍼할 때 아무 말 없이 그냥 기다려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을 건네면 그때 함께 실컷 슬퍼해 주는 것. 위로나 조언 따위는 필요치 않을 듯했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겪게 되는 타인 혹은 반려동물의 죽음에 대한 책들을 빌려 며칠을 함께 울고 웃으며 읽었다. 우리는 그렇게 점점 대빵이의 죽음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시시때때로 슬퍼했다.


엄마는 절대 울지 마. 나는 엄마가 울면 정말 세상이 끝난 거 같아서 싫어. 절대 울지 마.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아들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았지만, 혼자 집에 있을 때나 밤에 글을 쓸 때 문득 대빵이 생각이 나서 목 놓아 운 적이 종종 있다. 시작은 대빵이였으나 끝은 항상 먼저 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빵이를 키우며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은 나와 아들에게 정말 소중하고 감사한 추억이 되었다. 어느 책을 읽혀야 이토록 소중한 마음을 배울 수 있을까. 어느 유튜버의 동영상을 보여줘야 이처럼 다양하고 깊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을까.


작디작은 사마귀 한 마리가 남긴 이야기는 우주보다 크고 깊고 넓어서 우리는 우리의 첫 반려사마귀 마대빵 이야기를 종종 나누게 될 것이다.


난 이제 사마귀는 아주 조금 안 무서움!




친구가 되어 줘서 고마워.




다음 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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