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으로부터 사람 9.
반려 사마귀 대빵이를 키우면서 다양한 곤충들을 채집하고, 관찰하게 되고,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아들과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 읽었다. 움직이고 읽고, 아는 것을 공유하는 기쁨을 아들과 누린다는 것은 그네를 밀어주거나, 고운 모래를 손에 담아 주는 일들과는 분명히 다른 깊은 연대감을 느끼게 한다. 덕분에 여전히 벌레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근해지는 마음은 숨길 수 없다. 집에 대빵이와 둘만 남을 때면 가끔 아들 방에 들어가 사마귀 안부를 확인하기도 하고,
우리 대빵이 기분이 좋아요~~
하며 심리적 쓰담쓰담도 해 주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엔 아들 손에 올라가 있던 대빵이가 자꾸 내 쪽으로 앞다리를 파닥파닥 뻗는 걸,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만질 뻔도 했다. 길고 매끈한 등(?) 부분을 손가락으로 한 번쯤 쓸어주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나도 대빵이에게 은근히 정이 들었던 것도 같다.
특히나 대빵이는 진중하며 영특하고 듬직한 데다가 예술적 감각마저 풍부했다. 인간으로 치자면, ISFJ의 느낌이랄까?
풉. 그래, 어이없겠지. 비웃고 싶을 거야.
하지만 다양한 곤충을 접하고 키우다 보니 같은 종이라도 성향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빵이에게 먹이를 주면 단 한 번도 사냥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위치와 거리, 상대의 크기 등 모든 상황을 천천히 파악한 후, 단 한 방의 당랑권으로 먹잇감을 제압했다. 어쩌다 채집이 안 돼서 며칠간 먹이 급여를 못 할 때가 있어도, 절대 촐싹거리며 아등바등하지 않았다.
줄 테면 주고 말 테면 말아, 난 그런 경박한 곤충이 아니라고!
이뿐만이 아니라, 나와 아들이 나란히 앉아 대빵아, 하고 부르면 잠시 주저하다가 어김없이 아들에게로 다리를 뻗는 영특한 면도 있었다.
아, 진짜다.
어느 날엔 아들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 놀라운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환호하기도 했지만, 대빵이 덕분에 아들의 어깨가 우주 끝까지 올라간 건 다른 데 있었다.
바로,
피아노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사마귀!
그래, 분명히 또 웃을 거야, 웃겠지만, 대빵이는 피아노 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 내가 친구에게 이 말을 전하자,
다음에는 말도 했다 그래라.
엇,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럴 수도?
아들은 친구들을 데리고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갔다. 대빵이가 유독 좋아하는 행운목 잎사귀에 녀석을 살포시 올려놓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대빵아, 우리 보여 주자!
이제 배운 지 고작 몇 달 됐을까. 짧은 손가락으로 어설픈 연주를 이어나가면, 대빵이는 흔들흔들 춤을 췄다.
우와!!! 진짜야!!!
꼬마들은 눈을 동그랗게 해서는 작은 사마귀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들은 으쓱거리며 친구들을 한 번 본 다음, 손가락을 건반에서 뗐다. 대빵이는, 이 정도면 어때?, 하는 몸짓으로 춤을 멈추고 아들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우와!!! 우와!!! 짱이다!!! 대빵이 진짜 똑똑하다!!!
아들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딱히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니 얘들아, 라는 표정으로 행운목 화분에 손을 갖다 댔다. 그러면 대빵이는 그 손가락으로 폴짝하고 뛰며 곤충 묘기의 정점을 찍어 주었다.
엄마, 나는 대빵이가 너무너무 좋아. 사랑하는 마음이 들 정도라니까.
우리 가족은 소박한 다짐을 했다. 이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몹시 영특한 녀석을 꼭 크리스마스까지는 키워보자고, 몇 번 남은 탈피가 고비겠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정성껏 보살펴서 꼭 성충으로 키워보자고 했다.
춤을 출 때마다, 아들의 손으로 뛰어오를 때마다, 나에게로 오려고 다리를 옴짝거릴 때마다, 이름을 부르면 아들에게로 갈 때마다, 계속 그 모습을 보면서 웃고 쓰다듬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우리는 기록을 남기는 데에 열중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열심히 추억만 할 뿐 신기하고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던 너의 모습을 다시 볼 수가 없다.
하, 내가 이깟 널리고 널린 사마귀 때문에 슬퍼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