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으로부터 사람 8.
아들방은 반려 곤충의 사육장이다. 거기엔 대빵이의 주거지인 큰 케이지가 있고, 먹이용 곤충을 비축해 놓은 채집통, 나들이용 작은 케이지, 기타 곤충들의 다양한 사육통이 준비돼 있다. 폭우가 아닌 이상 창문은 반드시 열어 두어, 이 묘한 곤충들의 냄새를 우리집에 가능한 머물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다만 151mm 헤라클레스 왕장수풍뎅이와 80mm 수마트라 왕넓적 사슴벌레 등의 표본이 아들 방 중앙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표본 특유의 약품 냄새는 어쩔 수가 없다.
아들 방을 청소할 때마다 죽은 것과 산 것의 냄새가 묘하게 섞여 그곳에 오래 머물기가 쉽지 않다. 냄새뿐이 아니라, 먹이용 채집통에서 탈출한 녀석들, 사마귀가 먹다 남긴 어떠한 개체의 다리, 날개, 더듬이 등의 사체 조각들이 방 곳곳에 널려 있어서 그야말로 지뢰밭을 피하듯 발재간을 놀리며 방을 빠져나와야 한다.
너, 이런 사체 조각에서 막 기생충 같은 거 나오고 그러는 거, 알아, 몰라?
뭐, 연가시 같은 거?
그래, 그거 연가시. 알고 있었네.
연가시는 숙주를 물가로 유인해서 죽게 한대. 나도 책에서 봤어. 엄청 길어, 몸이...
묘사하지 마. 아무튼, 그거, 이런 야생 곤충한테 엄청 많대.
알아, 사마귀가 가장 유명한 연가시 셔틀이야.
그걸 다 아는 애가, 이렇게 사방에 곤충 사체 남기고 그럴 거야?
너 이러다가 우리 가족 다 연가시에 감염돼서 물가로 끌려간다면...
뭐야, 그거 다 뻥이야. 엄마는 순진한가 봐.
졸지에 순진해진 중년의 여자는 뻥인 줄 알면서도 연가시가 무섭고나.
... 꼽등이·메뚜기·사마귀 등에 기생하는 가느다란 철사 모양의 연가시가 주목되기도 한 바 있다. 연가시 유충은 메뚜기목 곤충의 몸속에 유입하여 어느 정도 자라면 신경조절물질을 분비해 숙주 곤충을 조종, 물가로 유인해 자살을 유도한다. 이때 연가시는 곤충의 몸에서 빠져나와 물속에서 생활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실제로 연가시의 사람 직접 감염 사례는 극히 드물고, 몇몇 끔찍한 예는 감염된 물고기 등을 먹었을 경우로 추정만 된다고 한다. 곤충 등의 숙주에 기생하는 연가시는, 특정 시기가 되면 숙주를 물가로 유인하여 그 몸에서 나와 물속으로 들어가는 무시무시한 서사를 가진 놈이다. 그 끔찍한 생애를 김명민 주연의 동명 영화에서 극화시켜 한동안 연가시 괴담이 떠돈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가장 흔한 최종 숙주로 알려진 사마귀와 꼽등이가 사람들의 손에 무참히도 죽어 나갔더랬다.
주위에 연가시 같은 존재, 많던데.
가벼운 마음으로 연예 뉴스를 보다 보면, 곤충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정치 사회면은 생략하자...) 일면식 없는 타인에 의한 피해도 그렇겠지만, 가장 가까이서 내 편이 돼 줘야 할 가족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는 사실만으로 남은 일생이 얼마나 지옥일까 생각해 본다.
개인적 친분도 없고, 그 진위도 재판에서 밝혀지겠지만, 상처받은 누군가에게 깊은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바이다. 그 또한 다 지나갈 것이며, 인생은 또 누군가의 손을 맞잡고 씩씩하게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고등한 인간이니까. 이렇게 위로하면서 쓰다듬는 것이 사람이니까.
연가시 감염의 공포는 뻥이라지만, 버그포비아 엄마가 어느 날 마음을 바꿔 집안에 곤충 출입을 금할 수도 있으므로, 아들은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먹이를 먹인 후엔 꼭 소독 티슈로 주변을 정리하고, 각 케이지마다 배설물 치우기, 수분 공급, 놀이터용 화분 관리하기 등 반려사마귀와 가족을 위한 규칙을 지키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약속을 어길 시 각종 집안일에 하나씩 참여하는 걸로, 평화로운 합의를 보았다.
파브르를 낳은 줄 알았더니 콩쥐를 낳았네!
아들은 좁은 어깨를 열심히 움직이며 크록스도 닦고 본인 빨래도 개고 그렇게, 곤충 반려인으로 기특하게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