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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굴씨 Aug 21. 2023

우리집 사마귀는 춤도 춥니다

곤충으로부터 사람 9.



대빵이와 산책하기



반려 사마귀 대빵이를 키우면서 다양한 곤충들을 채집하고, 관찰하게 되고,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아들과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 읽었다. 여전히 벌레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근해지는 마음은 숨길 수 없었다. 집에 대빵이와 둘만 남을 때면 가끔 아들방에 들어가 안부를 확인하기도 하고,


우리 대빵이 기분이 좋아요~~


하며 심리적 쓰담쓰담도 해 주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엔 아들 손에 올라가 있던 대빵이가 자꾸 내 쪽으로 앞다리를 파닥파닥 움직이는 귀여운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만질 뻔하기도 했다. 길고 매끈한 등(?) 부분을 손가락으로 한 번쯤 쓸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걸 보면 나도 대빵이에게 은근히 정이 들었던 것도 같다.


물론 그 어떤 곤충도 자의적으로, 단 한 번도 만져본 적은 없지만 마음의 준비는 조금씩 하고 있다.




우아하게 매달려 있는 대빵이


특히나 대빵이는 진중하며 영특하고 듬직한 데다가 예술적 감각마저 풍부했다.

약간 ISFJ의 느낌이랄까? 그래, 어이 없겠지. 비웃고 싶을 거야. 

하지만 다양한 곤충을 접하고 키우다 보면 같은 종이라도 성향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이든 곤충이든 셀 수도 없는 수많은 개체들 중 똑같은 것, 하나도 없다.


대빵이에게 먹이를 주면 단 한 번도 사냥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위치와 거리, 상대의 크기 등 모든 상황을 천천히 오래 파악을 한 후, 단 한 방의 당랑권으로 먹잇감을 제압했다. 어쩌다 채집이 안 돼서 먹이 급여를 못 해 배가 고플 때도 절대 촐싹거리며 아등바등하지 않았다.


줄 테면 주고 말 테면 말아, 난 그런 경박한 곤충이 아니라고.


나름의 시간을 갖으며 천장에 고고하게 매달려 있다가, 우아한 긴 다리를 하나 둘 움직이며 먹을 준비에 나서곤 했다. 뿐만 아니라, 나와 아들이 나란히 앉아 대빵아, 하고 부르면 잠시 주저하다가 어김없이 아들에게로 다리를 뻗는 영특한 면도 있었다.


아, 진짜다.


너무 신기해서 아들 녀석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그 놀라운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깨춤을 추며 환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빵이 덕분에 아들 녀석의 어깨가 우주 끝까지 올라간 건 다른 데 있었다.




바로,


피아노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사마귀!


그래, 분명히 또 웃을 거야, 웃겠지만, 대빵이는 피아노 소리에 춤을 췄다. 내가 친구에게 이 말을 전하자,


다음에는 말도 했다 그래라.


엇,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럴 수도?


아들은 친구들을 데리고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갔다. 유독 좋아하는 행운목 잎사귀에 대빵이를 올려놓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대빵아, 우리 보여 주자!


이제 고작 배운 지 몇 달 됐을까. 짧은 손가락으로 어설픈 음계를 이어나가면,


대빵이는 흔들흔들 춤을 췄다.


우와!!!!! 진짜야!!!!


꼬마들은 눈을 동그랗게 해서는 작은 사마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들은 으쓱거리며 친구들을 쓱 한 번 본 다음, 손가락을 건반에서 뗐다.


대빵이는 이 정도면 어때? 하는 몸짓으로 춤을 멈추고 아들을 바라봤다.


우와!!!!!! 우와!!!!!! 짱이다! 대빵이 진짜 똑똑하다!


아들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딱히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니 얘들아,라는 표정으로 행운목 화분에 손을 갖다 댔다. 그러면 대빵이는 그 손가락으로 폴짝하고 뛰며 곤충 묘기의 정점을 찍어 주었다.


엄마, 나는 대빵이가 너무너무 좋아. 사랑하는 것 같아.




우리 가족은 소박한 다짐을 했다. 이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몹시 영특한 녀석을 꼭 크리스마스까지는 키워보자고, 몇 번 남은 탈피가 고비겠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정성껏 길러서 꼭 성충으로 키워 보자고 했다.

춤을 출 때마다, 아들의 손으로 뛰어오를 때마다, 나에게로 오려고 다리를 옴짝거릴 때마다, 이름을 부르면 아들에게로 갈 때마다, 계속 그 모습을 보면서 웃고 쓰다듬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우리는 기록을 남기는데 열중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열심히 추억만 할 뿐 신기하고 기특하고 사랑스러웠던 너의 모습을 다 볼 수는 없다.  

하, 내가 이깟 널리고 널린 사마귀 때문에 밤마다 울게 될 줄이야.




다음 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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