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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굴씨 Aug 16. 2023

밀웜이 미래 식량이라면
나의 미래는 여기까지인 걸로

곤충으로부터 사람 7.




밀웜으로 만든 식용 제품. 광고는 절대 아닌 걸로.



 대빵이는 메뚜기나 귀뚜라미처럼 손수 잡아 온 신선한 먹이를 좋아했다. 하지만 매일 채집을 하기도 힘들고, 잡아 온 곤충들이 채집통을 빠져나와 집에서 날뛰는 일, 그 특유의 분비물을 처리해야 하는 일, 그리고 장벽 없이 퍼져나가는 오묘한 냄새 등 골칫거리투성이였다. (아마 이런 것들이 엄마들을 기겁하게 만드는 것일 테다. 나도 그렇다!) 

 그리하여 벌레를 키우기 위해 벌레를 주문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버렸다. 반려사마귀의 먹이로는 밀웜이 가장 대표적인데, 인터넷으로 쉽게 주문이 가능하다.     




 각종 반려동물의 먹이이자, 인류 식량난의 대표적 대용식인 밀웜은 갈색거저리라는 곤충의 애벌레이다. 얘들은 밀기울(밀에서 가루를 빼고 남은 찌꺼기)을 바닥재 삼아 배송되는데, 그 밀기울과 상추, 당근 등을 먹이로 주면 다른 보살핌 없이도 잘 자란다.     


엄마진짜 내일까지는 꼭 도착하는 거지?     


 밀웜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는 아직 되지 않았지만,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었다. 배송 중 폐사를 막기 위해 냉장용 아이스팩을 추가하라는데, 아이스팩이 불상의 이유로 배송 도중 다 녹으면? 내가 택배 상자를 딱 열었을 때, 죽은 벌레 수백 마리가 눈 앞에 펼쳐질 것이고 그럼 그 처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온라인 곤충샵을 부지런히 둘러보았다. 극소밀웜, 소, 중, 대 그리고 슈퍼밀웜에 이르러서 나는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다양하게 징그럽구나.     


 제품 상세 페이지에는, 슈퍼밀웜을 제외하고 냉장 보관을 하라는(성장을 늦추기 위해, 성장을 마치면 풍뎅이같이 생긴 성체 거저리가 되니까) 주의 사항이 적혀 있었다.     


냉장고에 넣기만 해냉장고에 밀웜 유전자라도 떠돌기만 해     


 머리가슴배의 형태까진 그나마 반려사마귀를 키우면서 참을 만은 한데, 다리 없는 벌레들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엄마이거 식용인 거 알지?     


 배송 온 상자를 열자마자 한 개 집어서 먹으려던 것, 등짝 스매싱으로 간신히 막았다.     


'나는 자연인이다손 안 내려?     


 아들은 나 모르게 밖에서 얼마나 다양한 금지의 것들을 입에 넣었을까. 그 맛이 궁금해서 아파트 단지의 풀들을 뜯어 먹은 것은 그나마 초식이니 넘어가 줄 만도 한데, 육식이라니.     


충식이라니!!!     



아들아, 익혀서는 먹자. 영화 '설국열차'에서 단백질 블록을 먹는 메이슨 역의 틸다 스윈튼. 사진=설국영화 / 캡쳐출처 : 중부일보


 대빵이는 밀웜을 주면 당랑권 자세로 경계만 하고 먹으려 하지 않았다. 핀셋으로 밀웜 몸통을 잡아 대빵이 입 앞에 가져가면 살아보겠다는 건지, 이거 놓으라는 건지,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댔다. 마치 돈키호테가 달려든 거대한 풍차같이 빙글빙글 도는 통에, 대빵이는 먹이를 눈앞에 두고도 뒷걸음치며 도망을 갔다.

그렇게, 대빵이게도 냉장고에게도 거절당한 밀웜들은 아들 방에 처박혀서 한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엄마엄마엄마이 통에서 사이다 소리가 나!     


 먼지 쌓인 밀웜 통 근처에 가서 귀를 기울이니 정말 사이다에서 기포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밀웜을 담은 통이 아주아주 조금씩,     


흔들렸다.     


!!!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 방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왜 이런 장면을 목격하면 팔다리를 가만 둘 수가 없는 것인지, 온몸으로 깨방정을 떨며 남편과 아들을 방으로 밀어 넣었다. 넣었더니, 작은 밀웜들이 케이지 안에서 탈피를 거쳐 엄청 큰 크기로 자라 있었고, 덩치가 커진 것들은 자기들끼리 몸이 엉켜서 이리저리 미친 듯 움직이고 있던 것이었다, 라고 전해 들었다.     


당연히 나는 끝까지 확인하지 아니 하였고.     


 먹이도 물도 제대로 주지 못하고 살갑게 보살피지도 못했는데 미안하게도 기특하게도 잘 버텨주었구나. 

밀웜을 먹이용으로 키우다 보면 실제로 사육통 안에서 성충 거저리로 자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바선생보다 크기는 좀 작지만 모양새가 꽤 닮은, 이름도 좀 저거한 거저리 선생.

곤충과 사람을 생각하고 어쩌고저쩌고해도 적응 안 된 벌레들은 못 참겠다. 

    

여전히 너무 무서워     


 그나저나 왜 이런 것들까지 먹어야 할 정도로 식량 위기가 닥친 것일까. 영화 ‘설국열차’에서 봤던 그 끔찍한 충식 장면이 정녕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란 말이냐. 나는 딱히 식량 위기에 기여한 바가 없는 것 같은데 왜 내가 피해를 봐야 하지? 인구증가, 국가 간 분쟁, 농작물 질병과 해충, 아무리 봐도 아 부분에서는 나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기후 변화, 급증하는 에너지 비용, 식품 낭비 이런 분야에서는? 

 나는 부끄럽게도 친환경, 생태적, 자연적, 이런 프레임과는 거리가 먼 도시적, 소비적 인간인 것은 맞다. 그래서 원인 제공을 하지 아니하였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는 없겠다. 그래도 살면서 착한 일도 꽤 많이 했다고 자부하는데, 일부 잘못의 대가가 충식이라면 나는 오늘부터 일분일초 참회의 마음으로 살리라.     


나의 미래는 여기까지인 걸로                                                                                




다음 편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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